며칠 전 있은 할리웃 외신기자협회(HFPA)의 브래들리 쿠퍼(오는 18일에 개봉되는 스릴러 ‘리미트리스’의 주연)와의 인터뷰 장에서 만난 나의 동료들은 지난 27일에 열린 오스카 시상식은 고통스러울 만큼 무미건조한 쇼였다며 혀를 찼다.
동료들은 젊은 두 사회자의 비 화학작용에서부터 말을 잘 못하는 94세의 커크 더글러스를 무대에 등장시킨 아카데미 측의 잘못된 선택 및 전연 특색이나 놀랄 것이 없는 쇼의 연출과 진행에 이르기까지 싸잡아 비판하면서 “우리 쇼(골든 글로브)가 훨씬 낫다”고 자화자찬했다.
나도 이 말에 백번 동의한다. 우선 이번 쇼에서 크게 지적 받을 점은 젊은 TV 시청자들을 노리고 선택한 사회자들인 두 젊은 배우 제임스 프랭코와 앤 해사웨이의 걸맞지 않는 컴비네이션이다. 해사웨이는 수없이 옷을 갈아입으며 그런대로 열심히 맡은 일을 해냈지만 프랭코는 시종일관 마지 못해 사회를 본다는 듯이 완전히 딴 데 있는 사람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둘 간에 화학작용이 일 리가 없다.
뇌일혈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발음이 불분명한 쇠약한 더글러스를 보면서 느낀 것은 올드스타의 영광이라기보다 외면하고픈 측은감이었다. 그것은 오래 전에 흉할 정도로 뼈만 남은 베티 데이비스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장광설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거의 혐오감에 가까운 감정과 같은 것이었다.
데이비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여서 더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더글러스의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레타 가르보가 전성기에 은막에서 은퇴하고 그 뒤로 대중 앞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번 쇼가 별 재미가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주요부문 상이 다 예상대로 주어졌다는 것. 깜짝 놀랄 일이 없어 심심했다. 쇼가 재미없었다는 사실은 TV 시청률이 지난해보다 10%나 떨어졌고 쇼의 광고 수익에 직결되는 소비성이 강한 18~49세층의 시청률도 11%나 하향했다는 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번 시상식에 다른 이름을 붙이자면 ‘왕의 귀환’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지난 1월 중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소셜 네트웍’이 작품상과 감독상(데이빗 핀처)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와 감독이 오스카상도 타는 것은 떼 놓은 당상처럼 여겨졌었다.
그런데 이런 예상이 역풍을 맞기 시작한 것은 골든 글로브 쇼 얼마 후 미제작자협회가 그 때까지만 해도 언더독이던 ‘킹스 스피치’를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하면서부터였다. 이어 ‘킹스 스피치’의 감독 톰 후퍼가 놀랍게도 미 감독노조에 의해 최우수 감독으로 그리고 미 배우노조가 역시 같은 영화의 콜린 퍼스를 최우수 주연남우로 뽑으면서 오스카상을 놓고 두 영화의 역학관계가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역학관계의 역전의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말더듬이 영국 왕 조지 6세와 그의 언어치료사 간의 우정과 충성 그리고 핸디캡의 극복과 용기를 그린 ‘킹스 스피치’(사진)는 인간적인 얘기를 좋아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이 감정적으로 크게 만족할 수 있는 영화라는 점.
이와 반면 ‘소셜 네트웍’의 주인공으로 페이스북의 창안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영화에서 오만한 젊은이로 묘사돼 정이 안 간다. 더욱이 50세 이상이 대부분인 아카데미 회원들로서는 인터넷에 관한 얘기가 별로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도 이 영화가 외면당한 이유로 지적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소셜 네트웍’의 배급사인 소니가 너무 자신감에 넘쳐 무려 1,000만달러 상당의 오스카 캠페인을 벌이면서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표를 던지라고 은근히 윽박지르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소셜 네트웍’은 ‘킹스 스피치’보다 두 달 전인 지난해 10월 초에 개봉돼 전미 비평가들의 격찬을 받으면서 너무 일찍 개화한 것도 마이너스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와인스틴이 배급한 ‘킹스 스피치’는 지난해 12월 초에 일부 대도시에서 개봉, 서서히 비평가들의 호평과 함께 관객의 입 선전을 받으면서 뒤늦게 만개했는데 지금도 상영 중에 있다(현 총 수입 1억여달러). 말하자면 거북이가 토끼와의 경주에서 이긴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오스카 경쟁에서 언더독이 막강한 상대를 누르고 승리를 한 경우가 더러 있다. 그 대표적 예가 하비 와인스틴의 미라맥스 작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스필버그의 ‘세이빙 프라이빗 라이언’을 극적으로 압도한 것으로 그러고 보니 와인스틴은 역전의 명수다.
‘킹스 스피치’로 오스카 각본상을 받은 데이빗 사이들러(73)는 수상 소감에서 “나의 아버지는 늘 내가 레이트 블루머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며 기뻐했다. ‘킹스 스피치’야 말로 레이트 블루머이다.
박흥진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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