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고운 것 보면/ 그대 생각납니다 / 이것이 사랑이라면/ 내 사랑은 당신입니다”<김용택 ‘내 사랑은’ 중에서>
아름답고 고운 것을 보면 왜 누군가가 생각날까? 그 마음에 닿아서, 마음의 문을 열고 아름다운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욕구, 아름다운 것을 매개로 소통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소통은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필요조건인데 한인가정들이 소통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LA의 한인가정상담소가 2010년 상담통계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전체 상담건수 538건 중 83건이 부부 간 소통부재를 문제로 삼았다. 부부가 서로의 생각이나 의견을 편안하게 주고받아야 가정이 원만한데 의사소통이 안 되니 불화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소통 실패는 사실 가정 내 대부분 문제의 발단이다. 갈등요인 1위인 소통부재에 이어 2위인 자녀와의 충돌, 3위 가정폭력, 4위 자녀 양육관련 부부갈등 등의 문제 역시 뿌리는 같다. 서로 말이 안 통하는 데서 충돌이 생기고, 폭력이 나온다. 그렇게 부딪치기를 반복하다 보면 상처가 깊어지고 그래서 아예 마음에 담을 쌓고 대화를 피하는 일이 생긴다. 대화단절이다.
똑같은 한국말을 쓰는 데도 소통이 안 되는 걸 보면 소통은 언어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지금 같이 한국말 하는 거 맞아?” 하며 말이 안 통해서 가슴 치며 답답해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각자의 고정관념이 상대방의 말에 대한 이해를 막기도 하고, 언어가 생각이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통 실패의 가장 보편적인 예로 꼽히는 것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이다. 남성과 여성의 언어 표현이 화성과 금성만큼이나 달라서 부부사이에, 애인사이에 불필요한 오해가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몇 년 전 독일에서는 그래서 ‘여성의 언어’ 사전이 나오기도 했다. 남성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여성이 하는 말의 진짜 의미를 설명해준다는 사전이다.
예를 들어 구두 가게에서 아내나 애인이 “이 구두 좀 봐줄래?” 한다면 그 속뜻은 “이 구두 좀 사줄래?” 라고 사전은 설명한다. 여성이 어떤 구두나 옷에 관심을 보인다는 건 그것을 갖고 싶다는 것, 그러니 사달라는 의미라는 걸 남성은 알지 못하고, 그걸 알지 못하는 남성을 여성은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은 남편·애인이 말 안 해도 알기를 바라고, 남성은 여성이 말을 안 하면 알지를 못한다. 소통의 흐름에 차질이 생긴다.
지난 6일 탄생 100주년을 맞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미국민들의 푸근한 회고의 대상이 되었다. 도무지 심각한 일도 급박한 일도 없는 듯 늘 웃는 모습이던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당시 통치능력과 관련해 비판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부인 못할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소통의 재능이었다. 어떤 이슈에 관해서건 그는 친근하고 유머 넘치는 말로 국민들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정치성향을 뛰어넘어서 그가 ‘위대한 소통자’로 칭송받는 이유이다.
소통은 어떻게 가능할까? 레이건의 소통의 재능을 세상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은 낸시 여사일 것이다. 낸시 여사는 수십년 결혼생활 내내 남편으로 부터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10년 전 그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일 때 그 편지들을 묶어 ‘사랑해요, 로니(I Love You, Ronnie)’라는 책을 냈었다.
1981년 부부가 백악관에서 첫 결혼기념일을 맞았을 때의 편지는 이렇게 시작된다. “친애하는 퍼스트레이디에게. 가없는 봉사로 한 남자(나)를 29년 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로 만든 데 대해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당신을 표창하는 것은 나의 영광이자 특권입니다.” 그리고 “집무실에 앉아 있으면 그녀의 창문이 보이고, 거기 그녀가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그 남자는 한없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라고 끝을 맺었다.
유머 넘치는 사랑의 편지들을 그는 집무실에서도, 공군기 1호 안에서도, 집에서도 썼다고 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런 지극한 관심과 애정이 그를 소통의 달인으로 만들었을 것 같다.
소통은 말이 아니라 관심이다. 말을 잘해서 소통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서 소통의 문이 열린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가장 빛나는 소통, 사랑을 기념하는 주말이다. 밸런타인스 데이를 맞으며 소통의 통로에 이상은 없는지 점검했으면 한다 - 아름다운 것을 보면 그가 생각나는가.
시는 이어진다. “지금 나는 빈 들판/ 노란 산국 곁을 지나며/ 당신 생각입니다 / 이게 진정 사랑이라면/ 백날천날이 아니래도/ 내 사랑은 당신입니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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