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LA 타임스에는 남가주의 한 한인가족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1970년대 초반 주한미군과 결혼한 다이앤(한국명 이점구)씨가 37년 만에 딸을 찾은 사연이었다. 이씨는 1974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들어오면서 생후 8개월의 딸을 잠시 친정에 맡겼다가 잃어버렸다. 그 과정이 명확하지 않아 그는 딸, 샐리가 유괴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샐리(38)를 그의 아들이 페이스북을 통해 찾아냈다. 이씨가 미국에 와서 낳은 남매 코니(36)와 스티브(34)는 자라면서 늘 샐리 이야기를 들어왔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누이는 막연한 그리움의 대상이었고, 그런 누이를 혹시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스티브는 지난여름 페이스북에 샐리의 홈페이지를 만들었었다. 그것을 몇주전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샐리의 딸이 발견하면서 기적 같은 가족상봉이 이루어졌다.
근 40년이 지나도 가슴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존재, 얼굴 한번 본적 없지만 그 빈자리가 늘 아린 존재 - 딸이고 누이,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란 그렇게 말로 설명 안 되는 어떤 근원적 끌림으로 절절한 대상인데, 한국에서는 그 가족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여성가족부가 지난주 발표한 ‘가족실태 조사’를 보면 한국인들이 ‘우리 가족’이라고 인식하는 범위는 부모형제, 자녀 그리고 배우자 정도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 할머니는 더 이상 ‘가족’이 아니다. 친·외조부모를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20%를 조금 넘는다. 그런데 친·외손자녀를 가족으로 여긴다는 응답 역시 25% 내외이니 서로가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시부모나 장인장모를 가족으로 여기는 경우는 절반 수준. "요즘 젊은 세대는 너무 개인주의적이어서"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사위·며느리를 가족으로 여기는 비율을 보면 그런 생각은 쑥 들어간다. 사위·며느리가 ‘우리 가족’이라는 응답은 그 절반인 25% 내외이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사위 사랑은 장모" 하며 가족에 대한 애착이 유별나던 한국인의 정서에 급격한 변화가 오고 있다.
이런 조사결과에 대해 미주한인들은 의아해하는 분위기이다. "손자가 가족이 아니라니 말도 안 된다" "70·80년대 이민 올 당시 의식구조 탓인지 주위 사람들을 보면 사위·며느리, 손자손녀 3대를 당연히 가족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보는 견해도 없지 않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3대,4대가 함께 살았으니 모두 ‘가족’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직계가족 아니면 자주 얼굴도 못 보는 상황에서 그들을 ‘가족’으로 여기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자라는 2세들이 한국의 조부모, 혹은 중국에 사는 삼촌과 사촌들을 ‘우리 가족’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 할머니이고 삼촌 사촌으로 인식할 뿐이다.
그렇기는 해도 ‘가족’의 울타리를 좁혀서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치려는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감지된다. 베벌리힐스 도서관에서 오래 근무하다 은퇴한 송정원 씨는 “미국에서는 가족의 범위를 넓히고 싶어 하는 데 한국은 반대로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미국인 친구들을 보면 남편의 전처소생을 비롯해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가족으로 포함시켜요. 백인인 우리 며느리의 부모는 사돈인 우리 부부도 가족으로 생각하지요. 확대가족을 상당히 소중하게 여겨요."
두루두루 모두를 가족으로 포함시킨다는 것은 그들과 더불어 편안하다는 것, 가족의 울타리에서 굳이 밀어낸다는 것은 같이 있으면 불편하다는 반증이 된다. 한국과 미국의 가족문화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결과라고 본다.
미국의 가족문화는 민주적이고 개인주의적이어서 서로가 서로에 대해 별로 부담감이 없다. 반면 한국에서는 가족 구성원으로서 의무의 전통이 깊다. 며느리는 시부모를 받들어야 하고, 잘 사는 형제는 못사는 형제를 챙겨야 하는 등 잘하면 아름답지만 삐끗하면 상처받기 쉬운 전통이다. 사회가 변하고 전통이 흔들리면서 서로가 서로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들이 ‘우리 가족’의 범위를 점점 좁게 만드는 것 같다. 그만큼 점점 외로운 존재들이 된다.
가족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지만 종종 ‘짐’이기도 하다. 짐이 된다고 밀어내면 힘이 될 기회도 같이 잃는다. ‘가족’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가. 기꺼이 ‘짐’을 떠안으면 그만큼 얻는 ‘힘’도 커지는 것이 불변의 진리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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