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와 같은 교회를 다니던 분으로부터 오래전에 들은 얘기이다. 지금은 목사가 되신 이 분은 1960년대에 미국에 오셨다고 했다. 당시 이분은 십대였는데 남부에서 사신 적이 있다고 했다. 필자 기억으로는 아마도 조지아 주였던 것 같다. 당시 이 분의 집에 세탁기가 따로 없어 빨래를 할 때면 동전을 넣고 세탁기를 사용하는 공공 세탁장을 이용했는데 입구에 “Whites Only”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고 했다. 미국에 온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던 이 분은, 아마도 미국에서는 흰색 옷과 아닌 옷을 세탁하는 장소가 따로 있나보다고 생각하셨다는 거다. 나중에서야 백인들과 유색인종들이 사용하는 공공 세탁장이 따로 있음을 알리는 안내문이라는 것을 아셨다고 했다.
필자가 버지니아주로 이민 온 것이 1974년도이다. 그런데 그보다 겨우 7년 전인 1967년에 ‘Loving v. Virginia’라는 유명한 케이스에 대한 판결이 연방대법원에서 내려졌다. 그 당시 버지니아 주에서는 백인과 유색인 사이의 결혼이 금지되어 있었고 이를 위반하는 사람은 중범죄인으로 간주되어 최하 1년에서 최고 5년까지의 징역으로 처벌될 수가 있었다. 이 법을 피하기 위해 타 지역으로 가서 결혼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1958년에 버지니아주에 살던 Loving 부부가 디씨로 가서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버지니아주로 다시 돌아온 이 부부는 한밤중에 집안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 남편이 백인이고 부인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하급심에서 유죄를 인정한 러빙 부부는 버지니아주를 떠나는 것을 조건으로 1년 징역형에 집행유예 25년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판결을 내렸던 판사의 판결문에 의하면 하나님은 백인, 흑인, 황색 등의 다른 인종들이 각각 따로 살게 하기 위해 각기 다른 대륙에서 살게끔 창조하셨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인종사이의 결혼은 하나님의 이러한 창조 계획에 반한다는 것이었다. 디씨로 이사한 러빙부부 케이스는 그 후 인권단체인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도움으로 재심신청 과정을 거쳐 1967년 연방대법원에서 연방헌법에 보장된 평등권 위반으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 시대에 와선 이러한 일들이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통해서야만 불합리한 일로 인정을 받고 종결될 수 있었음을 그 누구도 믿기 힘들지만, 필자가 미국에 이민 오기 겨우 몇 년 전까지도 있었던 일이고 필자보다 조금 먼저 미국에 오셨던 분들은 직접 겪었던 일이다. 지구상에 가장 민주주의가 발전되어 있고 인권이 존중되는 나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 이러한 생각키도 어려운 일들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었다.
지난 월요일에는 예년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탄생 기념일을 맞아 흑인 인권단체인 NAACP의 훼어팩스 지부가 주최하는 기념식에 참석했다. 흑인교회인 비엔나제일침례교회에서 열린 이 기념식에서 필자에게 다가온 질문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만약 안계셨다면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한인 이민자들의 민권 현주소는 어땠을까 하는 것이었다. 킹 목사의 노력과 죽음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1964년도에 제정되어 그 후에 계속 발전되어 온 민권법이 과연 같은 발전 속도와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을까? 혹시 러빙 부부 케이스 같은 사건이 없었다면 백인의 우월성에 기초하여 다른 인종사이들의 결혼을 금지했던 버지니아 법이 어쩌면 우리 친지들의 결혼에도 여전히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
이 날의 기념식 참석자 규모를 보며 NAACP의 위세가 그 사이 많이 줄었음도 느끼게 되었다. 킹 목사와 함께 1960년대 민권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세대들이 노령화되어 거의 대부분 현장에서 물러난 지금, 그 당시의 긴박감과 절실함이 느껴지기 어렵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인 듯 했다. 그 날 기념식 순서지에서 킹 목사가 산 위에 올라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언젠가 그 곳에 다다를 날이 있을 것이라 하시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원했던 흑인 찬송가의 한 교독문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킹 목사가 생각했던 ‘약속의 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흑인 대통령을 배출한 지금의 미국 상황이면 그 분이 생각했던 ‘약속의 땅’에 다다른 것으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그 날 어느 한 분의 인사말에서처럼 흑인들의 가정문제, 범죄문제, 교육문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약속의 땅’에의 다다름은 아직 먼 것일까?
킹 목사가 염두에 두신 ‘약속의 땅’을 생각하면서 필자의 마음에 크게 요동쳐 오는 또 다른 커다란 질문이 있었다. 킹 목사가 말씀하신 ‘약속의 땅’이 이곳에서 살아가는 한인 이민자와 후세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의 ‘약속의 땅’은 무엇이고 과연 우리는 언제 그 곳에 다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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