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실 때 짐이 될까봐 물건으로 안 하고 이걸 준비했어요.”
우리는 직장일 시작한지 몇 달 안 되는 아들이 있는 타주로 엄마를 모시고 가 그곳에서 지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아들아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카드에 상품권을 넣어서 주었다. 리츠칼튼 호텔에서 식사하는 상품권이었다. 웨이터 팁, 발레파킹비와 팁까지 포함해서, 새내기 직장인으로서는 거액을 써 장만한 선물이었다.
외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오리고기 요리를 제일 잘 하는 곳을 검색해서 정한 것이라고 했다. 장소가 버겁게 느껴졌다. 그 곳에서의 한 사람 식사비면 웬만한 레스토랑에서 네 식구가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언제 이런 호사를 누려보랴, 하고 우리는 한껏 힘주어 치장을 하고, 기죽지 않으려고 밝은 표정으로, 이런 곳을 자주 드나드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며 리츠칼튼 호텔 24층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애피타이저 전에 시키지도 않은 요리들이 세 가지가 나온 후에 우리가 시킨 애피타이저가 나왔는데 이때부터 엄마는 자못 실망을 감추지 못하셨다.
“에쿠, 음식이 왜 이렇게 모두 짜냐?”
정식 코스인 오리요리를 웨이터가 카트에 밀고 와 드라마틱한 손짓으로 정중하게 설명하자, 엄마는 얼굴을 찌푸리셨다.
“아니, 왜 저렇게 시커매! 태웠나, 원!”
게다가 고기와 야채를 싸서 먹는 전병이 안 나오고 미니찐빵으로 나오자,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아니, 무슨 오리고기를 찐빵에 샌드위치를 해서 먹으라는 거냐!”
결국, 몇 점 못 드시고 웨이터를 부르셨다. 웨이터에게 짧은 영어로 손짓을 해가며 남은걸 싸달라고 하시면서 이건 북경오리요리가 아니라고 하셨다. 어리둥절해하는 웨이터에게 나는 추가 통역설명을 해야 했다.
북경 오리요리는 색이 노릇노릇하고, 얇은 전병에 싸 먹어야하고, 소스는 달콤하면서 혀에서 녹아야하고… 아들아이가 고심해서 고른 선물은 완전히 실패였다. 다행히 아이는 그 날 저녁 회사일이 바빠 함께 하지 못해 이 사실을 모른다. 아이는 아마 우리가 우아한 식탁에 앉아 여러 명의 웨이터 시중을 받으며 맛있게 식사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즐거웠으리라.
‘크리스마스 12일’이라는 노래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탄부터 시작해서 12일 동안 매일 선물을 준다. 이 노래의 유래는 오늘의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과 전혀 다르지만, 12일 동안 선물을 준다는 노래가사만으로도 나는 알레르기반응이 나타난다. 선물 하나 고르는데도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은데, 12일 동안 줄 선물을 어떻게 생각해내라고!
여자형제가 여섯인 친정에서는 조카들 수가 늘어나면서 아이들 이름을 적어놓고 뽑기를 해서 선물을 한다. 액수도 정해놓는다. 올해 내게는 넷째 동생의 외동딸이 배당되었다. 책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나는 책 상품권을 마음에 두고, 그래도 확인 차 동생에게 이메일로 물었다.
“물어보니까 말인데....타일러가 오래전부터 ASPCS에 기부하고 싶어해. 그러니까 언니만 괜찮으면 체크로 보내주면 좋아할 거야.”
3학년짜리 꼬맹이가 자신이 필요한 걸 원하는 게 아니고 어디에 기부하고 싶은 마음을 먹는다는 게 너무나 뜻밖이었다. ASPCS가 뭔지 몰라 검색을 해보았다.‘동물학대 방지기관’이었다. 승마를 하는 아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이런 조카의 마음을 꿈에도 읽어내지 못했을 걸 생각하니 재미가 없어진다.
나의 첫 크리스마스 선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부모님은 물론 크리스마스 선물 전통을 모르고 계셨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일어나니 말로만 듣던 대로 머리맡에 무슨 꾸러미가 놓여있었다. 포장을 뜯어보니 작은 스케치북이었다! 우리집 문간방에 세들어 살던 ‘언니’가 준 선물이었다. 얼마나 신나고 좋았던지, 그 스케치북을 하루 종일 손에 들고 다녔다.
올해도 나는 참 신나는 선물을 받았다.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던 전자책을 딸아이가 선물했다. 여행을 떠나려면 짐에 넣어갈 책을 고르느라 고심하고, 여러 권을 들고 가기 때문에 꽤 무거운데, 이번 여행에서는 전자책 하나로 가뿐하게 짐을 꾸릴 수 있었다.
동화 1권, 에세이 2권, 소설 2권을 전자책에 입력하고 좋아하는 음악과 오디오북도 입력해서, 손바닥보다 조금 큰 물건 하나로 여행 내내 독서와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꼭 원하던 걸 선물로 받았을 때의 기쁨이란!
이영옥
대학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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