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꼽자면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이다. 새로 뽑은 대통령도 아니고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대통령의 지지도가 87%나 된다니 그 정도면 룰라만 행복한 것이 아니다. 그 국민들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2003년 그가 처음 취임했을 때만해도 이런 결과는 예상할 수 없었다. 노동운동가 출신의 좌파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은 기대보다 불안감이 컸다. 그러나 그의 재임 8년 동안 브라질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마디로 잘 살게 되었다. 경제 성장률이 이전 정부 때보다 두배 이상 높아지면서 브라질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인구 1억9,000만명중 2,800만명이 고질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3,600만명이 중산층으로 편입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브라질 국민들에게는 ‘구세주’가 따로 없다.
8년 만에 이룬 이 엄청난 업적의 비결을 룰라는 자신의 밑바닥 경험에서 찾는다. 퇴임 일주일 전 고별방송에서 그는 "빈곤층 출신이었던 것이 숱한 도전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며 "나의 꿈과 희망은 서민의 영혼과 가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으로부터 나왔다"고 밝혔다.
그는 고생을 많이 하면서 자란 사람이다. 지지리도 복이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나 학교에도 제때 들어갈 수가 없었다. 10살 때 겨우 입학했지만 그 마저 4학년으로 끝내야 했다.
12살 때부터 상파울루 거리를 헤매며 구두닦이를 하고 행상을 하다가 14살 때부터 공장에 들어갔다. 선반공으로 일하던 중 왼쪽 새끼손가락을 잃었고, 같은 공장에서 만난 첫 아내를 결혼 1년 만에 잃었다. 신혼의 아내는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병이 들고 치료를 못 받아서 임신한 채 죽었다. 아픔과 슬픔이 많은 잡초 같은 인생이었다.
그런데 그 ‘잡초’의 경험들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신을 강인하게 단련시켰다고 그는 말한다. 혹독한 시련의 경험들이 없었다면 그를 노동운동가로, 정치가로 성공시킨 카리스마와 결단력, 투지와 집요함, 강한 신념은 지금 같지 않았을 수가 있다.
LA 근교에서 자연농법으로 농장을 경영하는 분이 있다. 자연농법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점에서 유기농법과 비슷하지만 그 보다 더 자연법칙에 순응한다는 점이 다르다. 가능한 한 인위적인 노력을 가하지 않고 자연에 내어 맡기는 농사법이다. 그래서 잡초도 뽑지 않는다. 잡초가 과실수와 같이 자라도록 내버려 둔다.
"잡초가 물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과실수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남가주와 같은 사막지역에서 잡초가 무성하면 수분 증발을 막고 열사광선으로부터 뿌리를 보호해줍니다. 해충 피해도 덜어주지요"
그는 물도 나무가 죽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준다고 한다. 그렇게 나무를 어려운 환경으로 내몰면 나무는 생존을 위해 뿌리를 깊이깊이 뻗어 더 튼튼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흙은 흙대로, 식물은 식물대로 고유의 생명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는 것인데, 자연 안에서는 뽑아서 없애야 할 것들이 없다. 모두가 자연의 질서 안에서 어우러지고 걸러지는 가운데 과수원의 과실수들은 더 싱싱하고 당도 높은 과일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새해를 맞아 주고받는 덕담들로 화기애애하다. 불경기로 어렵게 지난 한해를 보낸 만큼 올해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는 느낌이 각별하다. 그 한마디에 실어 보내는 마음의 무게가 다르다. 새해 365일이 기쁘고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기를, 고생스럽고 아픈 일들은 좀 안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람일 뿐 실제 삶은 그렇게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새해에도 아마 기쁨 보다는 슬픔, 즐거움 보다는 괴로움, 희망 보다는 절망이 앞을 가로막는 날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런 역경들이 있어서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인내심을 기르고, 강인한 도전정신을 얻어서 오늘 이만큼이나마 성숙해졌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새해라는 과수원에서 우리는 또 어떤 과실들을 수확하게 될까? 모두의 과수원에서 탐스런 과실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되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잡초’를 너무 겁내지 말자. 실패나 좌절, 고통이라는 ‘잡초들’도 기꺼이 품어 안았으면 한다. 시련을 이겨낸 만큼 더 단단하고 실한 과실들을 상으로 얻게 될 것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