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적대적인 정치적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수십년 전만 해도 미국정치는 낭만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현재의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시행의 토대가 된 1965년 입법안 표결에서 공화당 연방하원 70명이 찬성표를 던진 반면 민주당 의원은 오히려 65명이나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하면 진보와 웰페어, 공화하면 보수에 부자 대변이라는 등식이 선뜻 떠오르지만 당시의 정치적 지형은 무조건적인 반대와 적대감보다는 타협과 중도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민주당인 케네디가 감세안을 제안하고 공화당인 닉슨은 반대로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던 때였다. 이념적, 경제적으로 벌어졌던 격차가 극적으로 좁혀졌다고 해서 ‘대 압축의 시대’라 불리던 때가 바로 그 시절이었다.
이처럼 중도적인 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미국사회가 경제적으로 그만큼 평등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인들 사이의 소득 격차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경제적인 평등은 의식의 편차를 좁혀주는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 타협의 정치가 들어설 여지가 생겼던 것이다.
1970년대 미국정치가 말해주듯 정치적인 지형은 경제적 평등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미국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공화당이 민주당과 견해 차이를 좁히면 미국인들의 소득 격차가 줄고 견해 차이가 늘어나면 소득 격차 또한 늘어났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타협의 여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팽팽하고 살풍경한 지금 미국인들의 경제적 불평등이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공식에 비춰볼 때 예측 가능한 결과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하다는 미국이 양극화의 중병을 앓고 있다. 계층 간 소득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으며 이런 격차의 원인이자 결과인 이념적 대립의 간극 또한 넓어지고 있다. 경기침체기를 지나면서 빈곤율이 15년래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가운데 부자들은 빠른 속도로 더욱 더 부자가 되고 있다는 인구조사국 통계보고서는 양극화가 위험수준에 도달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
얼마 전 양극화를 우려하고 개탄하는 의식 있는 부자들을 중심으로 사후 기부서약 운동이 벌어져 잔잔한 감동을 안겨줬다. 개인들의 기부와 나눔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한계가 있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지켜 온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한푼도 남기지 않고 전 재산을 기부한다고 해도 전체 인류로 볼 때는 1인당 몇 달러가 돌아갈 뿐이다.
미국의 수퍼 리치들이 사후에 내놓기로 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은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작은 씨앗은 될지언정 미국사회의 질병을 치유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데는 크게 미흡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공정한 사회가 화두로 등장한 후 나눔과 베풂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바람직한 현상이긴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의 선행과 온정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분배의 제도화라는 문제로 귀착된다. 시장만능주의자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모든 시민이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고 평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나라여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빈곤층과 무보험자가 양산되고 있는 미국을 진정한 선진국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명목상 높은 국민소득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나라 조사에서 미국의 순위는 날로 떨어지고 있다. 이 조사에서 최상위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잘 살뿐 아니라 관용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있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나눔과 기부가 개인적 관용이라면 복지와 분배는 사회적인 관용이다. 이 같은 사회적인 관용이 넓게 뿌리 내릴 때 구성원들의 행복지수는 비로소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타협의 지혜를 잃어가는 정치권은 반성해야 하고 개인들은 탐욕을 넘어서는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뿐 아니라 보수진영이 자주 입에 올리는 더욱 강한 미국을 위한 올바른 처방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럴 가망이 별로 보이고 있지 않다는데 미국이 처한 현실의 고민이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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