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아들이 죽다가 살아났다. 한창 기운이 펄펄할 26살의 청년이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겨우 회복이 되었다. 아들이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 며칠, 친구는 아들 곁에서 똑같이 죽다가 살아났다.
모든 것은 ‘드림’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시작은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친구의 남편이 미국에 지사를 내고 사업을 확장할 꿈을 가졌었다. 90년대 초반 9살에 미국에 온 아이는 낯선 학교생활에 적응하고 영어를 배우고 친구들을 사귀며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자라났다.
아이가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또래친구들은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하는데 자신은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얼마 전 한국의 사업이 기울면서 친구남편은 지사를 철수하고 돌아가고 친구 모자는 합법적 체류신분을 잃었다. 그래도 미국에 남은 것은 아이가 이미 ‘미국 아이’로 커버려 한국생활 적응이 어려울 것 같고 무엇보다 아이가 미국에 살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불법체류’의 생활은 불안하고 암담했다. 뿌연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가던 어느 날 한 가닥 빛이 보였다. ‘드림’이었다. DREAM(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이민미성년을 위한 계발, 구제 및 교육’ 법안이 2001년 발표되었다. 15살 이전에 미국에 와서 5년 이상 살며 고교과정을 마친 서류미비 청소년들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군복무를 하면 합법적 체류신분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친구 모자에게는 꿈같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이후 거의 10년이 지나도록 ‘드림 법안’은 여전히 ‘드림’일 뿐 현실이 되지 못하고 있다. 2001년 이후 연방의회 회기 때마다 비슷한 법안이 계속 상정되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특히 중간 선거를 앞둔 올해는 불경기로 사나워진 표심을 의식하느라 공화당은 적극적 ‘반 이민’, 민주당은 ‘이민’에 거리두기를 하면서 포괄적 이민개혁은 물 건너간 상태이다.
‘드림법안’ 통과를 기다리며 10대에서 어느덧 20대가 되어버린 청년들은 초조해졌다. 전국적 조직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드림법안 지지 호소에 나섰다. 올 회기 중 드림법안만이라도 단독으로 통과시켜 달라는 호소이다. 추방 위험을 불사하는 공개적 지지호소 행진, 단식투쟁, 연좌농성이 들불 번지듯 번지고 있다.
지난 봄 플로리다의 대학생 4명은 마이애미에서 워싱턴까지 1,800마일을 걸어서 행진했고, 지난 5월에는 불법이민에 서슬 퍼런 애리조나에서 대학생들이 존 매케인 상원의원 사무실 앞에서 연좌시위를 했다. 곳곳에서 단식투쟁도 벌어지고 있다.
LA에서는 지난달 21일부터 다이앤 파인슈타인 상원의원 사무실 건물 앞에서 단식투쟁이 전개되었다. 서류미비 학생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일반 학생들이 릴레이식으로 단식에 돌입했는데, 친구의 아들도 그 일원이었다. 단식에 앞서 의사가 건강검진을 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별 후유증이 없이 단식을 마쳤다.
친구의 아들은 5일 단식의 마지막 날 구토가 시작되더니 이후 극심한 구토가 계속되었다. 몸 안의 모든 수분이 빠져나간 듯 하루 반 사이에 체중이 12파운드가 줄었다. 빈사상태였다. 친구가 아들을 병원으로 옮겨가니 몸에 수분이 너무 없어서 링거바늘도 꽂히지를 않았다. 가까스로 바늘을 꽂아 6시간에 걸쳐 링거를 맞고 집으로 돌아와서 4일 동안 아이는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다.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였다. 아들 곁에서 엄마도 초죽음이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아이는 건강을 회복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죽다가 살아났는데도 그가 ‘불법체류’의 처지를 축복으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갖지 못했을 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류 미비라는 이유로 사회는 그를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경계선을 넘어오는 따듯한 인간애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꿈은 소외된 자, 힘없는 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회운동가가 되는 것이다. 드림법안 지지 운동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얻게 된 그의 개인적 ‘드림’이다. 친구의 아들과 같은 처지의 청년들은 미국에 200만명 정도 된다고 한다. 부모 손잡고 미국에 와서 여기서 자라고 공부해 전문 인력이 된 이들을 사회가 외면해야 할까? 이들을 품어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이민의 나라, 미국의 정신이라고 본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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