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카운티 주민들이 평균 80여 세를 살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카운티 보건국 자료에 따르면 소득수준이 낮은 사우스 LA, 캄튼 등지의 평균 수명은 70대 중반, 소득 수준이 높은 라캬나다, 월넛, 베벌리 힐스, 로랜하이츠 등지의 수명은 80대 중반으로 전체 평균은 80.3세이다.
한인들의 평균 수명은 거주지를 기준으로 할 때 85세 전후가 될 것 같다. 오복 중에서 다른 것은 몰라도 ‘장수’의 복만큼은 우리 대부분 넉넉하게 누리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80여년의 평균수명’이 무작정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가족 제도 하에서 자손들에 둘러싸여 북적북적 여생을 보내던 시대라면 분명 축복이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주변을 둘러보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이혼해서, 사별로 … 혼자 밥 먹고, 혼자 TV 보고, 혼자 잠자는 생활을 앞으로 20년, 30년 계속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장수’는 거저 주어지는 축복은 아니다. 외로움이라는 거대한 적이 앞에 버티고 있다.
독자들이 신문사로 보내오는 편지들을 읽다보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대부분은 오피니언에 기고하는 ‘독자의견’이지만 때로 엉뚱한 편지들이 섞여 있다. 발신인의 이름도 주소도 없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만을 횡설수설 늘어놓은 내용, 누군가가 “마귀에 씌어서 내가 구원해 줘야 한다’는 내용, “정보원이 나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는 내용 등이다. 이런 편지는 대개 여러 번 계속 오기 때문에 나중에는 필체를 알아볼 정도가 된다.
그들의 개별적 사정은 모두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짐작이 간다. 외로움일 것이다. 누구 한사람 붙잡고 속내를 털어놓을 대상이 없었을 것이다. 외로운 영혼의 사막같이 텅 빈 의식 속으로 우울증·망상·불안장애 같은 괴물이 들어와 앉았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 한분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정신적 ‘손상’을 안고 사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고 한다. 전문분야 업무능력은 전혀 손상되지 않아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술이라도 한잔 하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상이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된다"고 했다.
“다들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생기는 현상이지요"
마음 기댈 사람 없이 ‘자기 힘’으로만 살다보면 외로워서, 늙어서, 혹은 어떤 힘든 상황 때문에 힘이 약해지는 순간 정신적으로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라는 말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말이겠지만 특히 현대사회는 ‘고독’을 조장한다. ‘고립’이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
우선 혼자 사는 외톨이 인생이 너무 많다. 과거에는 ‘비정상’이던 1인 가구가 이제는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정상’ 가구 보다 많다. 미국 전체가구 중에서 1인 가구는 1940년 8%에 불과했지만 2000년 26%, 2008년 27.5%로 늘었다. 2000년 기준 부부와 자녀가 있는 가구는 22%이다. 인구 10명 중 적어도 한명이 혼자 사는 사람이다.
‘고립’의 벽을 높이는 또 다른 요인은 ‘프라이버시 문화’다. 프라이버시를 너무 중시하다 보니 단절로 이어진다. 친지가 어려운 상황이면 과거에는 찾아갔지만 지금은 귀찮게 하지 않는 것을 배려로 여긴다. 필요할 때마다 프라이버시라는 ‘고치’ 속으로 숨는 데 우리 모두 익숙하다.
이런 풍토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선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미국에서 1980년부터 시행된 이 법은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선의로 도울 경우 혹시 잘못된 게 있다 해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유로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소송을 당하면서 이제는 법의 효력이 거의 상실되었다. 섣불리 남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분위기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손 내밀지 않는 사회에서 ‘장수’는 쉽지 않은 과제이다. 외로움이라는 적과 싸울 대책이 필요하다. 해답은 물론 ‘사람’이다.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는 풍성한 대인관계는 매일 시간 맞춰 운동하고, 다이어트 하는 것보다 건강에 좋다고 한다. 최근 브리검영 대학과 노스 캐롤라이너 대학 연구진은 친구 없이 사는 외톨이 생활이 매일 담배를 15개피씩 피는 것만큼이나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외로움도 병이다. 타고난 기질, 그리고 외톨이로 사는 생활습관이 만드는 병이다. 그런 의미에서 외로움은 성인병이다. 고혈압, 당뇨 같은 성인병처럼 외로움도 예방이 최선이다. 운동은 못해도 친구는 열심히 만나야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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