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 혁신적인 분수령이 된 히치콕의 ‘사이코’(Psycho 1960)가 올 해로 개봉 반세기를 맞았다.
이 영화는 ‘환상’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새’ 및 ‘마니’와 함께 히치콕의 절정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공포영화에 대한 과거의 모든 금기사항과 함께 관객의 이 장르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 놓은 새디스틱한 명작이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 때 사복을 하고 얼마 전에 폐관된 중앙극장에서 봤는데 그 때 느꼈던 충격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히치콕은 늘 관객의 기대감을 조작하고 희롱하기를 즐겼는데 이 영화는 그의 이런 변태적인 특성이 잔인하고 어둡고 냉정하게 표출된 대표적인 작품이다. 그 좋은 예가 여자 주인공으로 간부이자 도둑인 매리온(재넷 리)을 영화 중간쯤에 가서 가차 없이 살해해 없애버린 것. 매리온이 살해되는 ‘샤워 신’<사진>은 할리웃 사상 전무후무한 쇼킹한 것이다.
히치콕은 40초간 진행되는 이 장면을 찍는데 1주일을 소비했는데 그 것은 매리온의 나신을 계속해 베고 찌르는 난도질과 매리온이 비명을 지르면서 칼질을 두 손으로 막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몽타주 편집하기 위해서였다. 영화를 자세히 보면 칼은 막상 매리온의 몸에 닿지 않는 기막힌 편집이다. 히치콕이 이 영화를 흑백으로 찍은 이유는 매리온이 난자당해 흘리는 피의 참혹함과 잔인성을 감소시키기 위해서였다.
히치콕은 좁은 공간과 노출되고 무방비 상태인 샤워장을 전연 뜻밖의 갑작스런 살인의 현장으로 사용, 인간의 공포심리를 극한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리는 이 영화 후 평생을 샤워장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 ‘샤워 신’이 보는 사람의 모골을 송연케 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은 히치콕의 명콤비였던 버나드 허만이 작곡한 음악 때문이다. 허만은 바이얼린만을 사용한 불협화음적 하모니를 자아내는 최소한의 음악을 통해 공격하는 칼질과 매리온의 비명의 리듬을 동시에 불러내면서 청각을 비롯해 인간의 전 감관을 유린하고 있다.
그런데 히치콕은 처음에 ‘샤워 신’을 음악 없이 처리하려고 했다가 허만의 음악을 듣고서 마음을 바꿨다고 한다. 허만의 음악은 이 장면뿐 아니라 영화 전편을 통해 작품의 음울하고 악의적인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샤워 신’은 후에 만들어진 모든 ‘슬래셔 무비’(난도질해 살인하는 영화)의 효시 구실을 하게 되는데 히치콕이 리를 일찌감치 죽여 없앤 것은 그의 금발미녀에 대한 선망과 질투의 발로라는 해석이 있다.
단구에 두 턱을 한 뚱보였던 히치콕은 자기 영화에서 유난히 금발미녀들을 학대하면서 쾌감을 즐겼다. 리를 비롯해 그레이스 켈리(‘다이얼 M을 돌려라’)와 티피 헤드렌(‘새’)과 킴 노박(‘환상’) 및 에바 마리 세인트(‘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 여러 명의 눈부신 금발미녀들이 죽을 고생을 한다. 이들은 모두 히치콕에게는 화중지병의 존재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섹스를 중요한 구심점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영화에서 섹스는 정상적인 것이라기보다 변태적인 내성을 안고 있다. 사체 섹스(‘환상’)와 관음증(‘사이코’)과 색정광(‘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 온갖 변태적 섹스를 구사하고 있다.
‘사이코’는 관음증뿐 아니라 매리온의 살해자인 노만(앤소니 퍼킨스)에게 죽은 어머니의 옷과 가발을 씌워 성도착증이라는 또 다른 변태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함께 ‘마마 보이’ 노만의 광기를 통해 모권이 지배하는 가족제도에까지 해코지를 하고 있다.
‘사이코’는 위스콘신에서 있은 에드 게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로버트 블록이 쓴 책이 원전으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와 같은 이중성격자의 얘기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짚어 보고도 있다.
매우 독특하고 독창적인 플롯을 지닌 영화인데 히치콕은 영화를 만들면서 흥행성공에 회의를 느껴 TV영화로 만들 생각을 했었다.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허만의 음악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장삿속이 뛰어난 히치콕은 해골상태인 노만의 어머니역 후보로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발표, 다른 배우들과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술을 보이기도 했다.
영화는 비평가를 위한 시사회 없이 개봉, 일부 비평가들의 악의에 찬 혹평을 받았지만 빅히트를 했다. 히치콕은 후에 “‘사이코’는 하나의 큰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우리는 히치콕의 농담에 놀아난 것이다.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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