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라티노들이 어느 날 모두 파업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멀리 볼 것 없이 한인타운만 봐도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것이뻔하다. 한인 비즈니스 대부분이 라티노 노동력 없이는 작동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인이 주인이고 한인이 고객인 전형적인 ‘한인 비즈니스’라 해도 무대 전면의 배우만 한인일 뿐 무대 뒤 스텝은 라티노들이다. 김치, 김밥, 설렁탕… 한국음식이 라티노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한인 수퍼마켓에서 야채 다듬고 상품 진열하는 일, 봉제공장에서 재봉틀 돌리고, 청소용역 회사에서 청소 맡아하는 일 등이 모두 라티노의 몫이다.
그뿐이 아니다. 맞벌이부부 가정에서 아이들 돌봐주는 보모, 청소하고 밥하는 가사 도우미가 대개 라티노 여성들이니 이들 모두가 일시에 사라진다면 타운은 마비되고 말 것이다.
오는 29일 애리조나의 이민단속법 시행을 앞두고 “진즉에 그렇게 했어야 한다"는 반이민 정서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대 여론이 팽팽하다. 애리조나 주법은 연방이민국이 관할하는 불법이민 단속업무를 일선 경찰이 할 수 있게 바꾸었다. 경찰이 봐서 불법이민자라고 의심이 되면 그 자리에서 조사해 체포할 권한을 갖게 하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합법적 체류자격 없는 이민자들은 취업은커녕 마음 놓고 바깥출입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애리조나는 ‘공포의 주’가 되고 불법이민자들은 대거 타주로 떠나고 있다. 불안 속에 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상반된 두가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불법이민 근절에 이만한 방법이 없겠다"며 20여개 주가 유사 법안을 추진 중이고, 라티노를 비롯한 이민 커뮤니티들은 이 법이 결과적으로 인종혐오와 인종차별을 부추긴다며 강력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양쪽 모두 올해가 중간선거의 해라는 타이밍과 맞물려 있다.
불경기가 장기화하면서 유권자들의 불만은 쌓일 대로 쌓여가고 있다. 그 분노를 어디로 뽑아낼 것인가 - 우파 정치인들에게 ‘불법이민’ 만한 ‘동네 북’은 없다. 공화당 후보들은 누가 더 ‘반 이민’에 투철 한가 내기를 하는 분위기이다.
반면 라티노 등 이민자 권익옹호 단체들은 애리조나 식 이민단속 지지 정치인들에게 “11월 선거에서 보자"며 표 몰이에 나섰다. 올 중간선거는 ‘반 이민’ 대 ‘이민 옹호’의 힘겨루기로 판가름이 날 전망이다.
불법이민은 왜 이렇게 문제가 되는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유권자들을 자극하는 요인은 ‘일자리’이다. 실업률이 10%를 넘나드는 때에 미국국민도 아닌 자들이 몰려와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반감이다. 제1 표적은 미전국 1,100만 불법이민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라티노들이다. 라티노는 정말 미국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걸까.
코미디언 스티븐 콜버트가 진행하는 ‘콜버트 리포트’에 지난 8일 농장노동자 연합(UFW)의 라르투로 로드리게즈 회장이 출연했다. UFW의 ‘우리 일자리 가져가세요"라는 캠페인을 소개하고 이민개혁의 필요성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농장 노동자들의 85%는 외국 태생 - 거의 라티노들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불법이민자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UFW가 캠페인을 벌이는 취지는 “우리가 일자리 빼앗는다고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와서 일해보라"는 것. 전국적 캠페인에 희망자는 이제껏 3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에 앞서 연초에는 개브리얼 톰슨이라는 백인 청년이 1년간 신분을 속이고 농장노동자로 일한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9.11 테러 이후 이민단속이 강화되면서 농장이나 가축도살장들이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는 보도를 본 후 언론인이자 저자인 그가 농장일꾼으로 위장취업을 했다.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허리도 못 펴고 상추를 따는 일을 한 그는 “서른 살 건장한 몸에 진통제를 달고 살아도 견디기 힘든 노동"이었다고 증언한다. 시간 당 40달러를 준다 해도 미국인들은 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책 ‘음지에서 하는 일’에 불법이민자들이 차별에 시달리며 단 몇푼의 생활비를 위해 피땀 흘리는 현장을 생생히 담았다.
이민자에 대한 공격은 많은 부분 ‘사실’ 보다는 ‘감정’에 기초한다. 현실에 대한 불만을 터트릴 희생양을 찾는 심리이다. 라티노 인력이 없으면 의식주 기초가 마비되는 것이 미국의 현주소이다. 배척 보다는 포용이 미국답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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