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보기가 민망했어요. 페어플레이 정신과 인과응보의 사회정의는 축구장 밖으로 쫓겨난 셈이 아닌가요?”
월드컵 기간 우루과이와 가나의 8강전을 10대 자녀들과 함께 TV로 지켜본 한 친지가 나에게 따지듯 물었다. 연장전 종료 직전 우루과이의 수아레즈가 골문 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가나의 명백한 역전골을 두 손으로 극적으로 막아낸 고의적 반칙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가나는 결국 다 잡았던 4강 티켓을 우루과이에게 넘겨주었다.
수아레즈의 반칙에 분노한 축구 팬 못지않게 예상 외로 많은 팬들이 그의 입장을 옹호했다. 퇴장 등 벌칙이 룰에 따라 투명하게 적용된 경기이기 때문에 반칙은 미워도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명백한 골을 막은 반칙을 골을 보장할 수 없는 벌칙으로 다스리는 현행 룰은 공정하지 않으므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아무튼 한국이 우루과이의 입장이었다면 나도 온 국민과 함께 팔짝 뛰며 열광하지 않았을까?
골프와는 달리 격렬한 몸싸움이 잦은 축구에서 반칙이 전혀 없는 경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백년하청이다. 그러나 반칙의 불가피성이 결코 반칙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않는다. 지능적, 전략적, 혹은 우발적 등 반칙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 놓아도 여전히 반칙은 반칙이다.
반칙은 페어플레이를 저해하므로 당연히 지양되어야 한다. 페어플레이란 성문화된 규칙은 물론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승리의 기회를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행위이다.
반칙은 때로 경기장 밖에서 두고두고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나는 이 대가야말로 선수와 팀 그리고 국가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벌칙이 아닌가 한다. 수아레즈의 핸들링은 마라도나의 ‘신의 손’ 족보에 올라 가장 불명예스런 반칙의 하나로 이미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았다. 이처럼 만천하에 파울 플레이로 오명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선수들이 피하고 싶은 두려운 벌칙이 아닐까?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8강전에서 마라도나는 그의 손과 머리가 합작한 골로 조국에 승리를 안기며 그가 명명한 ‘신의 손’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전 세계 축구 팬들이 TV를 통해 다 지켜본 핸들링에 의한 골을 ‘신의 손’이 도와주었다며 궤변을 늘어놓았다. 신의 도움인지 그의 반칙은 심판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아직도 그는 반칙행위를 솔직하게 시인하지 않고 있다. 그의 ‘신의 손’(Hand of God) 앞에는 ‘악명 높은’(Infamous)이라는 단골 수식어가 항상 붙어 다닌다. 승리의 기쁨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파울 플레이와 부정직한 매너는 역사에 길이 남아 이 순간까지도 축구 천재의 명성과 아르헨티나의 이미지를 흐리고 있다.
그가 반칙만 곧 바로 시인했더라면 도덕적 시비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역사적 심판이야말로 무서운 것이다.
“불공정하고 부당하게 얻은 승리는 아무런 가치가 없고, 반칙 행위는 결코 기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페어플레이 정신은 스포츠가 상업화되면서 승패에만 집착해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선수, 팬, 체육계 그리고 스폰서가 4위 일체가 되어 페어플레이를 한 목소리로 외쳐댄다면 스포츠가 팬들에게 더 큰 기쁨을 선사함은 물론 사회에 만연한 탈법과 불법의 홍수로부터 페어플레이를 지켜내는 방주가 될 수도 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 페어플레이 상이 우승국인 스페인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얘들아, 신사적으로 해라!”
차남인 내가 대여섯 살 때, 선친이 두 살 터울씩인 세 아들에게 이불 위에서 힘겨루기 시합을 시켜놓고 심판을 보시며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선친은 해방 뒤인 1948년 14회 런던 올림픽 대회 때 첫 태극 마크를 달고 참가했던 올림피언이셨다. 선친은 일본 메이지 대학 유학 중 레슬링에 입문해 선수로 활약하셨다.
나는 페어플레이라는 단어는 몰랐어도 ‘신사적’이라는 낱말의 의미는 나름대로 깨닫고 있었다. 조무래기들 사이에도 걸핏하면 들먹이던 말이 ‘신사적’이었다. 운동시합도, 각종 놀이도 신사적으로 했었다. 싸움을 해도 신사적으로 해야 했다. 손톱으로 할퀴는 행위는 사내로서 가장 부끄러운 행위였다. 치사하다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
‘신사적’은 ‘공정하게’와 동의어였다. 페어플레이는 신사도와 통한다.
존경하는 신사숙녀 여러분! 페어플레이를 합시다!
황시엽 / W.A. 고무 실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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