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비엔나에서 러시아 스파이 10명과 미국 스파이 4명을 교환한 일은 마치 냉전시대 미소 간 스파이 교환을 연상케 하는 한편의 복고풍 드라마였다.
비엔나와 함께 냉전시대 미소 간 스파이 교환 장소로 사용된 곳이 베를린과 포츠담 사이를 연결하는 글리니케 다리<사진>다. 나는 지난 4월 영화 취재차 베를린에 갔다가 이 다리를 건넜는데 다리 중간에 동서독을 가르던 경계선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글리니케 다리를 통해 교환된 미스파이 중 유명한 인물이 1962년 소련이 풀어준 미첩보용 U-2기의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즈다. 또 소련에서 인권운동을 하다가 체포된 유대인 아나톨리 샤란스키도 지난 1986년 이 다리를 통해 서방세계로 넘어 왔다.
액션과 음모와 배신이 뒤섞인 스파이 활동은 그 자체가 하나의 극적인 드라마여서 무성영화 시대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스파이 영화가 가장 인기를 끌었을 때는 1960년대. 그 전에도 히치콕의 ‘오명’과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등 스파이 영화들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 장르가 붐을 이루게 된 것은 ‘닥터 노’(1962)와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1963-한국명 ‘007/위기일발’)로 시작된 제임스 본드 시리즈 때문이다.
션 코너리가 주연한 이 시리즈가 빅히트를 하면서 영화와 TV를 통해 뛰어난 스파이 영화와 함께 아류작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아류작들로는 둘 다 코미디인 딘 마틴 주연의 ‘맷 헬름’ 시리즈와 제임스 코번이 나온 ‘플린트 작전’ 시리즈 그리고 ‘O.S.S. 117’ 등이 있었고 최근에는 코미디언 마이크 마이어스가 나온 ‘오스틴 파워즈’ 시리즈가 빅히트를 했다. TV 시리즈로는 ‘맨 프롬 U.N.C.L.E’과 ‘미션: 임파서블’이 유명하다.
60년대 만들어진 훌륭한 스파이 영화들 중 최고작은 리처드 버튼이 은퇴를 얼마 앞둔 지친 서방 스파이로 나온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다. 소설 ‘007 시리즈’의 작가 이안 플레밍처럼 첩보부 출신의 영국의 스릴러 작가 존 르 카레(필명)의 소설이 원작으로 냉정하고 사실적인 명화다.
르 카레의 또 다른 스파이 소설로 영국 첩보부 내 스파이 색출을 다룬 ‘팅커, 테일러, 소울저, 스파이’가 레이프 화인스와 게리 올드맨 주연으로 오는 10월부터 런던에서 촬영에 들어간다.
그리고 프랭크 시내트라가 주연한 한국전을 배경으로 한 ‘맨추리언 캔디데이트’와 윌리엄 홀덴이 이중첩자로 나온 ‘가짜 배신자’ 및 마이클 케인 주연의 해리 팔머 시리즈 ‘입크레스 파일’도 다 뛰어난 스파이 영화들이다. 오는 23일에 개봉되는 앤젤리나 졸리 주연의 액션스릴러 ‘솔트’도 스파이 영화다.
스파이 영화 하면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 미인계다. 소위 남자 잡는 여자인 ‘팜므 파탈’을 등장시켜 남자에게 몸 주고 정보를 빼내는데 지난 9일 교환된 러시아 스파이들 중 유일한 여자인 애나 채프맨(28-일명 아냐 쿠쉬첸코)을 놓고 매스컴은 ‘현대판 마타 하리’라고 법석들을 떨어댔다.
채프맨은 예쁘고 섹시하고 사교적인 파티 걸이었는데 사실 그를 비롯해 러시아로 간 스파이들은 미국으로부터 고급 비밀을 빼내지 못했다고 한다.
스파이 미인계의 대표적 인물이 네덜란드 태생의 미모와 섹시한 몸매를 겸비한 마타 하리다. 1차 대전 때 독일을 위해 스파이 노릇을 했다는 혐의로 프랑스에서 사형 당한 마타 하리의 삶은 책과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그 대표적 영화가 그레타 가르보가 나와 고혹적으로 섹시한 춤을 추는 ‘마타 하리’(1932)다. 가르보 외에 마를렌 디트릭과 잔느 모로도 마타 하리로 나왔다.
대부분 남자 스파이들은 미인계에 놀아나지만 이 미인들을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향유하고 희롱하는 자가 희대의 호색한 제임스 본드다. 본드는 시리즈 제2편으로 맷 몬로가 걸걸한 음성으로 부르는 주제가가 멋있는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의 소련 여첩자 다니엘라 비앙키를 비롯해 오너 블랙만과 클로딘 오제 그리고 바바라 박과 소피 마르소 등 스파이와 비스파이를 불문하고 자기 것으로 취했다.
가장 정력이 출중했던 본드는 코너리였는데 세월이 갈수록 본드가 방탕기를 자제하면서 최근 본드인 대니얼 크레이그는 거의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할 정도다.
미인계는 한국 스파이사에도 있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광복 후 미 군정시절 미군 헌병대장의 동거녀였던 이화여전 출신의 미녀 김수임. ‘한국판 마타 하리’라 불렸던 김수임은 북한을 위한 간첩혐의로 1950년 6.25사변 직전 사형 당했는데 최근 이 사건은 한국 경찰에 의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글리니케 다리를 밟은 지 불과 두달여만에 미 러시아 간 스파이 교환 뉴스를 읽으면서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파이즈 아 포레버’.
박흥진 /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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