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만 먹고 사는 한이 있어도 일을 그만 둬야 하는 건가?"라는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이다. 자녀들이 방학을 해서 ‘하루 종일’ 집에 있고 보니 일하는 엄마들의 마음이 ‘하루 종일’ 편치가 않다.
자녀의 나이에 따라, 재정 형편에 따라 학원에 보내기도 하고, 과외 활동을 시켜보기도 하지만 방학은 방학, 고삐 풀린 시간이 너무 많다. 넘쳐나는 시간을 아이들이 어떻게 보내는 지, 감독 할 수 없어 불안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주지 못해 미안하고, 그러다 퇴근해 보면 속이 터지는 것이 요즘 직장 가진 엄마들의 심정이다. 이런 하소연들을 한다.
“집에 가보면 매일 똑같아요. 딸은 TV 앞에, 아들은 컴퓨터 앞에 … 늦잠 자고 일어나서 오후 내내 그러고 있었겠지요. 저희들끼리 차려먹고 어질러놓은 부엌을 치우다 보면 (직장)일을 계속 해야 하는 건지 회의가 생겨요"
어른 없는 집, 할 일 없는 시간, 무료함 - 부모들의 불안은 근거가 있다. ‘금지된 장난’에 끼어들기 딱 좋은 조건이다. 실제로 10대 청소년들이 담배나 술, 마리화나에 처음 손대본 것이 여름방학이었다는 경우들이 많다. “무슨 별일이 있을까" 하고 방심하다가 호되게 뒤통수를 맞는 경험을 부모들은 심심찮게 한다.
한인들이 선호하는 글렌데일·라크라센타 지역에서 지난 2009~10 학사연도 마약 관련 위반으로 정학· 퇴학을 당한 한인학생이 17명이나 되었다. 교육구 산하 5개 중고교에서 마약을 복용·소지하거나 판매한 행위로 처벌받는 학생은 연간 50~60명 선. 서너 명 중 한명이 한인학생인 셈이다.
이들 한인학생의 대다수인 13명은 모두 크레센타밸리 고교 재학생들이어서 이 학교 한인 학부모들은 지금 비상이 걸렸다. 자녀교육을 위해 학군 좋은 지역을 찾아 자리를 잡았는데 학교에 마약이 이렇게 나돈다니 “아이를 24시간 따라다닐 수도 없고…" 부모들은 불안하다.
미국에서 마약은 어느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위 학군 좋은 지역으로 꼽히는 중상층 거주지치고 마약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중상층 지역 아이들은 방학 중의 넘쳐나는 시간에 더해 돈까지 넉넉하니 파티가 잦고, 파티에는 술, 담배, 마약이 등장하기 일쑤다.
1세 부모들은 대개 ‘마리화나’라는 말만 들어도 기겁을 하는데 그런 주부에게 고교생 딸이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마리화나는 5분이면 구할 수 있어요. 담배는 신분증이 필요하지만 마리화나는 신분증도 필요 없거든요"
아이들이 유혹의 홍수 속에서 자라고 있다. ‘탈선’이라야 청소년입장불가 영화관에 가는 것이 고작이던 부모 세대에 비해 요즘 청소년들은 손만 뻗으면 탈선할 거리들이 널려있다. 게다가 부부 맞벌이, 편부모 가정이 많아져 아이들은 어른들의 눈길에서 벗어나 있는 시간이 너무 많다. ‘고삐 풀린 망아지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10대 청소년기는 ‘애벌레’에서 ‘나비’로 향하는 과정이다. 몸은 갓 애벌레를 벗어났는데 마음은 벌써 나비가 되어 훨훨 날고 싶어 안달이다. 음주, 흡연에 손을 대보고, 이유 없이 반항을 해보는 심리들이다. 부모에 속해있던 존재에서 독립된 개체로 떨어져 나가려는 자연스런 성장의 고통이다.
문제는 ‘고삐’다. 부모가 고삐를 너무 조여도 너무 풀어도 문제가 된다. 아이가 건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삶의 들판을 탐험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알맞게 풀어주는 것이 지혜다.
라크라센타 지역에서는 이번 주말 한인부모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마약방지 세미나’가 열린다. 행사를 준비 중인 제임스 곽씨는 세 딸이 크레센타밸리 고교를 졸업했다. 지금은 직장으로, 대학으로 떠났지만 딸들이 10대일 때 이 가족에게는 본받을 만한 전통이 있었다. 매주 월요일을 ‘가정의 날’로 정해 식구들이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자녀들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면역력은 그런 시간들, 그렇게 다져진 탄탄한 관계들로 형성된다.
아이들을 24시간 감독하는 일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고삐를 조절하며 그 끝을 부모가 단단히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줄 뿐이다. 사랑과 관심의 고삐이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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