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금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큰 뿔테안경을 쓴 미국 백인 배우 미키 루니가 뻐드렁니의 일본인으로 나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보면 아시안으로서 모멸감에 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 영화와 함께 존 웨인이 가느다란 콧수염을 한 파란 눈의 징기스칸으로 나온 ‘정복자’는 흥행을 위해서라면 인종표현을 비롯해 역사적 사실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할리웃의 무감각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꼽히고 있다.
할리웃이 반드시 백인 유대인들이 말아 먹다시피 하는 동네여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할리웃은 무성영화 시대부터 유색인종 묘사에 백인을 써왔다.
최초의 토키 ‘재즈 싱어’에서는 알 졸슨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나와 노래를 불렀고 많은 웨스턴에서도 백인들이 아메리칸 인디언 역을 했다. 버트 랭카스터, 록 허드슨, 찰스 브론슨 및 제프 챈들러 등은 모두 아메리칸 인디언 출신이다.
아시안역 역시 백인들이 맡아 했다. 펄 벅의 소설이 원작인 ‘대지’에서 중국인 시골 부부로 폴 뮤니와 루이즈 레이너가 각기 나와 레이너는 오스카상까지 탔다.
왕년의 인기 탐정물 시리즈 ‘찰리 챈’과 ‘미스터 모토’의 주인공은 각기 중국인과 일본인인데도 챈역은 스웨덴 태생의 워너 올랜드가 그리고 모토역은 독일배우 피터 로레가 연기했다. 또 둘 다 명 코미디언이었던 피터 셀러즈와 토니 랜달도 각기 ‘닥터 후만추의 악마적 계획’과 ‘닥터 라오의 일곱 얼굴’에서 모두 아시안으로 나왔다. 이들이 묘사한 동양인의 특징은 옆으로 찢어진 가느다란 눈과 콧수염.
그런데 현재 미국에서 상영 중인 ‘페르시아의 왕자’와 ‘마지막 에어벤더’에서 할리웃의 왜곡된 인종묘사 고질이 재발, 아시안들의 강력한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5월28일에 개봉된 비디오게임이 원전인 ‘페르시아의 왕자’에서 왕자 다스탄으로 나오는 배우는 중동인이 아닌 스웨덴 혈통의 유대계 미국인인 제이크 질렌할이다. 그뿐 아니라 영국배우 제마 애더튼이 맡은 열사의 나라의 공주역을 비롯해 극중 중요역을 모두 비중동인들이 맡고 있다.
이에 대해 중동계 미국인들은 “그런 배역 선정은 중동인이나 남아시안들에게 모욕적인 처사”라고 비난했다. 한편 이런 비판에 대해 질렌할은 “순전히 허구적 모험영화를 놓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한 마디.
이 영화에 이어 다시 아시안들의 분통을 터뜨린 것이 지난 1일 개봉된 아동용 액션 모험영화 ‘마지막 에어벤더’. 만화가 원전인 이 영화에서 공기를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닌 소년 앙 등 4명의 주인공은 모두 아시안이나 아메리칸 인디언들인데도 앙을 비롯해 4명 중 3명을 백인 배우가 맡아 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계 단체인 민족학교와 영화와 TV에서의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한 긍정적 묘사를 위해 활동하는 아시안 미디어 액션 네트웍(MANAA) 등 아태계 단체들은 지난 1일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영화의 감독이 유명한 인도계인 M. 나잇 샤야말란이라는 점. 그러나 스튜디오에 고용된 일개 감독으로서 샤야말란은 설사 주인공에 아시안을 쓰고 싶었더라도 속수무책인 처지다.
스튜디오들이 아시안역을 백인들에게 주는 것은 흥행 때문이다. 편당 제작비가 평균 5,000만~6,000만달러를 호가하는 요즘 관객에게 낯선 아시안 배우보다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를 써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에 대해 가이 아오키 MANAA 회장은 “사람들이 아시안이 주연하는 영화를 보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추정적일 뿐 아니라 모욕적”이라며 “‘마지막 에어벤더’가 장사가 잘 되면 아시안 아메리칸에 대한 차별행위가 효과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라고 이 영화에 대한 보이콧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개봉 6일째인 지난 6일 현재 총 7,000만달러의 수입을 올리면서 빅히트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관객이 바로 된 인종묘사에 별 관심 없는 아이들이어서 이 영화는 앞으로 방학동안 흥행호조를 보일 것 같다.
할리웃은 옛날부터 시대 흐름에 유난히 뒤지고 있는 산업집단이라는 비판을 들어 왔다. 흑인 대통령이 생기는 요즘 유색인종 묘사를 제대로 못하는 것이 그 한 예다.
이렇게 할리웃에 유색인종에 대한 ‘유리천장’이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점차 미국 내 아시아계 인구가 증가하면서 영화와 TV에서 이들을 중요한 역에 쓰는 경우가 과거보다 훨씬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한국계 배우들의 활동이 눈부시다.
현재 하와이에서 찍고 있는 TV 시리즈 ‘하와이 5-0’의 두 주인공인 대니얼 대 김과 그레이스 박 그리고 존 조와 릭 윤 및 김윤진과 켄 정과 성 강 등이 그 좋은 예다. 이들의 대선배는 도산의 아들 필립 안이다. 필립의 이름은 할리웃 명성의 거리에 별자리로 남아 있다.
박흥진 /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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