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것은 인간의 오랜 꿈이었다. 땅에 발을 딛고서야 살 수 있는 우리의 육체적 조건, 그 한계를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다. 그런 욕망이 투영돼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으로서 최초로 하늘을 훨훨 날아본 인물이 등장한다. 이카로스이다.
이카로스는 당대의 명공, 다이달로스의 아들이었다. 손재주가 신기에 가까웠던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명령으로 누구도 탈출할 수 없는 완벽한 미궁을 만든다. 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왕의 미움을 사서 그 자신이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미궁에 갇힌다.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궁 - 다이달로스는 공중 탈출을 시도한다. 새의 깃털을 모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들었다. 날개를 단 부자는 탈출에 성공하지만 비상의 쾌감에 취한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다. 너무 높이 날면 위험하다는 말을 잊은 채 높이 높이 날다가 날개를 붙인 밀랍이 태양열에 녹아내려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이카로스의 날개’는 도전 혹은 동경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미궁이라는 현실, 날개라는 도전 정신, 그리고 태양이라는 예기치 못한 난관 - 세상 사람들의 삶이 천차만별인 것은 이 세가지 조건·상황에 대한 반응이 제각각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현실에 대충 안주하며 사는 삶이 있고, 기어이 튀어 올라서 뭔가를 이뤄내야 직성이 풀리는 삶이 있다. 난관 앞에서 숨고르기를 잘 하는 삶이 있고 한순간에 추락하는 삶이 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른 스타들이 별똥별처럼 떨어져 내린다. 환호와 선망의 대상이었던 스타들이 줄줄이 자살해서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또?"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반듯한 이미지가 인상적이었던 배우·가수 박용하(33) 씨가 자살대열에 합류했다. 그 전에도 자살이 있기는 했지만 지난 몇 년 사이에는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큼 스타들의 자살이 줄을 잇는다. 대충 짚어도 최진실, 최진영, 이은주, 정다빈, 안재환, 장자연 … 거기에 ‘스타’나 다름없던 노무현 전 대통령, 각자 자기 분야에서 스타였던 대기업 간부, 의사, 교수 등.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들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극심한 생활고나 불치병 등 삶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혹 모를까, 그와는 거리가 먼 소위 ‘스타’들의 자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사람들은 헷갈린다. 자살의 단골원인으로 꼽히는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정신과 의사들은 자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우선 지적한다. 한국사회는 자살을 너무 사회적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 정신과 의사는 말했다. 인기인으로서의 부담감, 연예인이라는 직업상의 불안정성, 혹은 검찰에 불려 다니며 겪는 모멸감, 무대 중심에서 밀려나는 소외감 등 외적 상황들에 초점을 맞춰 사회 문제화하지만 자살은 기본적으로 의학적 문제라는 것이다.
자기 분야에서의 특출한 능력과 별개로 그들은 안타깝게도 정신의학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해석이다. 정신병원을 드나들다 자살한 천재화가 반 고흐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 다른 정신과의사는 그들을 스타로 뜨게 만든 어떤 특질을 양날의 칼로 본다. ‘대충’을 용납하지 못하는 완벽주의, 목표를 향해 집요하게 매진하는 치열함 등이 종종 성공의 추진력이 되지만 상황이 바뀌면 그것이 반대로 자기를 찌르는 비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카로스의 비상을 가능하게 한 날개가 결과적으로 그의 죽음을 몰고 온 것과 같은 이치이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는 법. 날개가 없었다면 추락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카로스’는 ‘미궁’에서 수명대로 살았을 것이다.
박용하 씨의 빈소에 일본에서까지 팬들이 몰려와 슬퍼하던 며칠 전 광주에서는 한 보건소장의 퇴임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이달로 퇴임하는 김세현(59) 소장은 선천성 뇌성마비 3급의 중증 장애인이다. 그의 지난 삶이 안락했을 리가 없다.
의대를 9년 걸려 졸업하고도 받아주는 직장이 없었고, 가는 곳마다 냉담한 시선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런 그가 “저는 엄청난 행운아입니다. 부모와 형을 잘 만난 복, 집사람 복, 환자 복, 직원 복 등등 …"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부족할 것 없는 ‘스타’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웃으면 얼굴이 더 일그러지는 중증 장애인은 “복이 많다"며 흡족해하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삶을 만드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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