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의 KBS-TV가 현충일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었다. 국립 대전현충원에 묻힌 호국영령들, 그 숭고한 죽음들을 소개하고 의미를 짚어보는 내용이었다. 그중 한 아버지의 사연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70세의 아버지는 18년 전 아들을 잃었다. 대학재학 중 입대한 아들이 군에서 사고사를 당했다. 그 아들에게 아버지는 지금도 편지를 쓴다. “제법 아침과 저녁에는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동안 저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잘 지내고 있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로 이어지는 편지가 18년 세월과 함께 700통에 달한다. 수신자 없는 편지는 현충원 민원실에 쌓여 있다.
아버지가 아들이 살아있기라도 하듯 세세하게 안부를 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들이 살았을 때 그렇게 해보지 못한 한 때문이다. “평소 자상한 아버지였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돈 벌어 준 것밖에는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하나도 못했다. 따뜻하게 가슴에 품어준 적도 별로 없다"며 애통해했다.
특히 두고두고 후회가 되는 것은 대학 다니던 아들이 갑자기 “휴학 하겠다"고 했을 때 다짜고짜 뺨을 때린 것.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들어볼 생각도 안 했다"며 지금껏 자신의 옹졸함을 자책하고 있다.
아들에 대해 기대는 높고 이해는 부족한 것은 많은 아버지들의 공통점이다. 대부분 남성들이 딸에게는 너그럽다가도 아들에게는 엄한 측면이 있다. 아들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무의식 때문이다. 특히 이민사회에는 정신력으로 역경을 이겨낸 아버지들이 많고, 그들의 눈에 아쉬움 모르고 자란 아들들은 성에 차지 않아 부자간이 삐걱거리는 경우가 많다.
자수성가형의 강한 아버지, 그 기대에 못 미치는 유약한 아들의 대표적인 예로는 영조와 사도세자 케이스를 들 수 있다.
영조는 콤플렉스 속에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다. 어머니가 천한 무수리 출신이라는 태생적 열등감이 있는 데다 왕위 계승과정도 석연치 않았다. 이복형인 경종이 노론소론의 당파싸움에 휘둘리다 재위 4년 만에 갑작스럽게 죽고, 득세한 노론이 그를 왕위에 올렸다. 하지만 정통성 논란이 이어지고, 왕은 힘이 없었다.
영조가 콤플렉스를 뛰어 넘은 방편은 공부였다. 밤낮으로 책에 파묻혀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학문적 수준이 신하들을 가르치고, 서적을 다수 집필할 정도였다. 왕은 아들에게도 같은 기대를 걸었다. 세자가 3살 때부터 조기교육을 시작해 교재를 직접 만들 만큼 교육열이 대단했다.
하지만 아들의 능력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세자도 처음에는 상당한 자질을 보였지만 아버지의 혹독한 교육을 따라가기에는 부족했다. 영조의 책망과 질책이 이어지고 세자는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을 속으로 누르다가 불안장애가 생기고 공격적 행동으로 폭발했다. 아들을 훌륭한 왕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결과적으로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세상에 불가능한 것은 온 세상을 만족시키는 것 그리고 한 아버지를 만족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아들에게) 어머니의 사랑은 거저 주어지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자격이 있어야 받는다"고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도 말했다.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거는 높은 기대가 원인이다.
지난해 8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장례식 때 아들 에드워드 주니어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가 12살 때 뼈암으로 다리를 잃고 의족으로 걷기연습을 갓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눈이 펑펑 내린 날 “아버지가 가파른 드라이브웨이로 올라가서 썰매를 타자고 하더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빙판에서 넘어지기를 몇 번 하다가 “도저히 할 수 없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때 아버지가 튼튼한 팔로 부드럽게 나를 일으키더니 내 평생 잊지 못할 말을 했어요"
“네가 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네가 할 수 없는 건 하나도 없단다. 하루 종일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같이 올라가는 거다"라는 말이었다. 아버지의 부축을 받으며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온 후 삶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그는 전했다.
그런 아버지를 기억하는 아들은 행복하다. 아들에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다. 아들이 그를 어떤 아버지로 기억하는 가가 중요하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하늘같은, 이해는 바다 같은 아버지로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아버지날에 기억되길 바란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