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오페라가 뮤직센터에서 공연한 바그너의 4부작 뮤직 드라마 ‘니벨룽의 반지’의 첫 사이클를 관람했다. 다음은 이 사이클을 관람한 한 독자의 소감이다.
‘링사이클’은 바그너 자신의 인생 같이 큰 논란의 대상이 되어온 작품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이 방대한 뮤직 드라마가 의미하는 바가 다양하고 광범위해 어떤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니벨룽의 반지’의 자연 원리와 기능은 동양적 음양 오행설에도 부합된다. 오행은 금(라인골트), 목(재나무), 수(라인강), 화(불의 관리자 로게), 토(땅의 여신 에르다)이며 음양은 등장하는 많은 대칭및 보완의 관계속의 인물들과 그들의 행동이라 할수 있다.
형이상학적 입장의 ‘링’의 이해는 신화적 신의 위치를 신학적 신의 존재와 대비하여 바그너의 다른 가극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관을 보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링’의 이야기에서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연관하여 인간의 행동의 심리적 원인을 파악하는 관점은 프로이드와 융이 시작하기 전에 바그너가 시도한 것이다.
이번 LA 오페라의 ‘링사이클’은 여러 관점에서 많은 문제를 제시하였다. 영화산업의 본고장이며 오페라와 같이 총체예술인 영화를 만드는 LA에서 창조적이며 새로운 각도의 ‘링’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충분히 있었는데 처음 계획한 영화감독 제작자의 참여를 경제성 때문에 포기하고 독일인 화가 출신의 무대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에게 맡기게 된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화가 출신이어서 인지 종합예술의 요소 중에서 시각적 무대와 의상 및 도구에 더 치중하여 ‘링’의 연극적 요소가 희생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프라이어는 형태, 선, 색깔로써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에 입각한 자신의 ‘링’의 세계를 구축하여 무대 연출의 새로운 시도를 모색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어른들의 동화를 만들었고 가수들은 애니메이션 같은 연기를 하게 되었다. 가면, 복잡한 의상 및 과장된 화장은 가수들의 노래, 표정, 연기 및 행동을 억제하였고 드라마적 요소를 극히 제한하였다.
등장인물들의 실체와 그들의 그림자 내지 분신으로 하여금 실체들의 의지 표현을 행동하게 한 것은 새로웠으나 번거로웠다. 전체적으로 지금까지 연출되고 공연된 전통적이거나 현대적인 무대연출을 동시에 피하려는 그의 노력은 높이 인정하지만 관객으로서는 ‘링사이클’이 전달하려는 의미와 주제를 프라이어의 무대연출을 통하여 파악하는데 많은 애로가 있었다.
신과 인간의 시간개념을 원과 직선으로 표현하거나 수평적 또 수직적 무대장치의 의미 및 색깔로 구별되는 각가지의 구상적 추상적 의미를 통한 무대연출은 바그너의 음악적 유도 동기(leitmotif)를 시각적 유도 동기와 병행하여 연출가로서 청각과 시각의 완벽한 총체예술을 의도한 노력에 비하여 의미의 희박성으로 결과는 미약하였다.
가수들 중 지크문트 역의 플라시도 도밍고는 ‘발퀴레’ 2막의 브룬힐데와 대면하는 죽음의 신(사진)에서 자신이 올 초에 경험한 절박성을 노래와 연기에 노련하게 표현하였다. 하겐의 역을 한 에릭 할프바르손의 노래와 연기가 출중하였고 (그는 거인 하프너로도 나왔다) 미메의 그래암 클락과 알베릭의 리처드 폴 휭크가 훌륭했다. 미셸 드 영은 프리카와 사이클 시작 전에 사임한 안냐 캄페를 대신하여 지클린데 및 발트라우테 등 1인4역을 해냈다. 보탄 역의 비탈이 코발요브는 시간이 갈수록 노래와 연기가 더 원숙해졌으며 브룬힐데 역의 린다 왓슨은 무난했으나 지크프리트 역의 존 트레리븐은 코믹함이 지나쳐 우스꽝스러운 만화 주인공이 되었으며 노래 또한 미흡하였다. 제임스 콘론의 지휘와 오케스트라는 음향의 사각지대인 광활한 뮤직센터에 도전하여 성공을 이루었다.
‘신들의 황혼’ 3막에서 하겐이 지크프리트를 살해했을 때 경악한 기부흥 족의 봉신들이 하겐에게, “하겐, 너 무엇을 하는가” “너 무엇을 했는가”라고 묻는다. 나는 아힘 프라이어에게 묻고 싶다. “아힘, 너 무엇을 하는가, 너 무엇을 했는가”라고.
바그너의 ‘링’ 추종자들은 ‘링’이 어떤 연출의 공연이건 간에 불평하며 언제나 다음의 새로운 ‘링’ 공연이 완벽과 만족을 줄 것으로 환상하면서 원탁의 기사들이 성배를 찾듯 새로운 ‘링 사이클’을 보러간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여러 번 들은 옛 이야기를 또 들음으로써 아직도 못 터득한 이야기 속의 지혜를 다시 찾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링’의 마지막 사이클은18~26일에 걸쳐 공연된다.
박흥진 /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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