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늘 개봉되는 ‘카라데 키드’에 나온 재키 챈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축구팬이며 이번 월드컵을 기대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챈은 이에 대해 “옛날에는 밤을 새워 축구를 봤는데 요즘은 과거에 비해 팀들이 너무 많고 변화도 빨라 점점 흥미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챈이야 어쨌든 지금 전 세계는 11일부터 남아공에서 열리는 월드컵 열기로 화끈하게 달아 있다. 이 곳 시간으로 12일 새벽 4시30분에 열리는 한국의 첫 경기인 그리스와의 대전을 위해 LA에서는 다운타운의 스테이플스센터에서 대규모 한인 합동응원이 벌어진다.
축구는 전 세계서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 경기인데도 유독 미국에서는 아직도 남의 동네 경기로 취급받고 있다. ‘사커 맘’이 있고 전국에 5만여 아메리칸 유스 사커(풋볼이라 불러야 맞다)조직위 하에 65만여명의 선수들이 있건만 미국사람들에게 축구는 교외에 사는 어린 아이를 둔 엄마의 경기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니 할리웃이 온갖 종류의 스포츠 영화를 만들면서도 축구영화는 배척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유명한 권투영화로는 ‘성난 황소’와 ‘록키’ 야구영화로는 ‘불 더램’과 ‘꿈의 구장’ 미식축구영화로는 ‘노스 달라스 포티’와 ‘가장 긴 야드’ 농구영화로는 ‘후지어스’ 그리고 아이스하키영화로는 ‘슬랩 샷’과 ‘기적’이 있고 심지어 당구영화로 ‘허슬러’와 그 속편 ‘돈의 색깔’이 있다. 이밖에 골프, 자동차와 자전거 경기, 스키와 승마와 서핑 등도 종종 영화 소재가 되나 축구영화 이름 대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언뜻 생각나는 것이 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실베스터 스탤론이 골키퍼로 나온 ‘빅토리’(1981)다. 독일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축구선수 출신의 포로들과 독일 대표팀 간의 ‘축구전쟁’을 그린 멜로물로 바나나킥 묘기를 보여주는 펠레와 영국의 바비 무어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오스발도 아딜레스 등 실제 스타 축구선수들이 나온다. 그러나 영화는 거장 휴스턴의 것 답지 않게 타작이다.
이밖에 이탈리안 아메리칸 선수들이 주축이 된 미 대표팀이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 선전을 한 언더독 실화 ‘그들 생애의 경기’(2005)가 생각나는 정도다. 독일의 빔 벤더스 감독의 명화 ‘페널티킥에서의 골리의 불안’(1971)은 주인공이 축구선수이긴 하지만 내용은 운동경기보다 한 개인의 소외감을 다룬 철학적인 영화다.
내가 가장 감동 깊게 본 축구영화는 극영화가 아닌 기록영화로 제목이 미국영화처럼 ‘그들 생애의 경기’(The Game of Their Lives·2002·사진)다. 영국 감독 댄 고든이 만든 이 영화는 지난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서 북한의 천리마축구단이 이탈리아를 1대0으로 물리친 내용을 담은 것이다.
당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길 확률은 1,000대1이었는데 이런 확률을 뒤엎고 북한이 승리, 이 경기는 ‘월드컵 사상 최대의 충격’으로 불리고 있다.
고든 감독은 북한에 들어가 코치 등 경기에 참전했던 7명의 선수들을 인터뷰하고 이들을 경기가 열렸던 영국의 미들스브로로 초청, 과거 북한 선수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그들을 자기 팀처럼 끝까지 응원했던 이 마을 주민들과의 감격적인 재회의 장면 등을 담았다. 이와 함께 당시 북한 카메라 팀이 찍은 컬러 경기장면도 흥미진진하다.
이탈리아전에서 득점한 선수는 백넘버 7번의 박도익으로 그는 “영국인들은 우리를 그들의 가슴으로 맞아주었고 우리도 그랬다. 나는 축구가 이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고 추억하고 있다.
팀웍과 개인기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축구가 할리웃의 서자 취급을 받고 있는 이유를 전문가들은 먼저 이 경기가 미국의 토착경기가 아니라는 데서 찾고 있다. 그리고 축구는 쉽게 영상화 할 수 없는 순간 경기이며 득점수가 적고 미식축구와 야구와 농구가 전략 등을 논의하기 위해 쉬는 시간이 많은 반면 축구는 90분을 거의 쉬지 않고 진행되고 또 배우들이 효과적으로 경기를 진짜 선수가 하는 것처럼 눈속임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할리웃이 축구를 포용하지 않는 이유는 영화 제작자요 미 프로축구팀 시애틀 사운더스의 구단주인 조 로스가 가장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최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사람들은 외국 기피증자들로 미국 밖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월드컵을 맞아 축구광 철학자들의 수필을 모은 ‘축구와 철학’(Soccer and Philosophy)이 출간됐다. 남아공 월드컵에는 한국과 함께 북한이 44년 만에 출전했다. 같은 나라 두 팀의 선전을 빈다.
박흥진 /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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