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67) 편집 국차장은 신문기자로서 ‘살아있는 전설’에 속한다. 1972년 워터케이트 사건 특종 후 그의 이름에 따라붙은 후광은 40년 한 우물을 파는 동안 빛바래지 않았다.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을 직업으로 택한, 선택받은 행운아들이 누리는 축복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이렇게 확실한 그의 길도 처음부터 확실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모퉁이 돌아서면 훤히 보이는 길이 모퉁이 직전까지 감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땅위의 길도 그렇고 인생의 길도 그렇다.
우드워드는 해군 ROTC 장학금으로 예일대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5년을 복무했다. 1970년 8월 제대를 앞두고 그는 상당히 불안했었다고 한다. 제대는 코앞인데 정해진 직장은 없고, 어느 길로 가야할 지도 모르겠고 …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무척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절박함’ ‘불안함’ ‘표류하는 느낌’ 같은 표현으로 회고한 적이 있다.
그가 느꼈던 막막함을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5월에 졸업식을 했거나 졸업을 앞둔 240만 미국의 대학 졸업생들 중 일자리가 정해진 케이스는 24%에 불과하다. 나머지 180만명은 암담한 심정으로 등 떠밀리듯 대학문을 나서고 있다.
올해는 취업시장이 좀 나을 것으로 전망 되었지만 실제로는 지난해와 별 차이가 없다. 대학졸업생 취업현황을 추적하는 전국 대학과 고용주협회 조사에 의하면 2010년 봄 기업들의 채용은 2009년 봄에 비해 겨우 5% 증가했다. 지난해는 2008년 봄에 비해 20%나 채용이 줄어든 상태였다. “구직 원서를 수십 군데에 보내도 답이 없다"고 졸업생들은 한숨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다"며 희망에 부풀었던 젊은이들이 경제한파라는 냉혹한 현실을 호되게 경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미국만이 아니다. 글로벌 경제는 불경기도 글로벌, 실직도 글로벌로 만든다. 우리가 잘 아는 한국의 ‘이태백’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비슷하게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한달 전 영국에서는 취업실패를 비관한 21세 여성이 자살해서 사회적 충격이 되었다. 비키 해리슨이라는 여성은 필경 빨리 독립하고 싶은 욕심에 대학을 중퇴하고 구직에 나섰다. 하지만 2년 동안 수없이 구직신청을 해도 번번이 실패였다.
실직자 생계보조금을 신청하러 가기 전날 밤 그는 부모와 남자친구에게 유서를 써놓고 자살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되고 싶지 않다"고 썼다. “딸이 2년이나 취직을 못한 데 대한 굴욕감을 견디지 못해했다"고 그 부모는 전했다.
마약중독자도, 10대 미혼모도 아닌 건강하고 명석한 젊은이가 이렇게 취직이 어렵다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영국여론은 들끓었다.
취직이 안 된다고 자살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발을 내딛고 싶은 사회로부터 “너는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계속 받다보면 죽을 만큼 깊은 좌절감에 빠질 수가 있다. 졸업하고도 취직이 안돼서 여전히 생활비 보태달라고 손 벌리는 자녀, 짐 싸들고 집으로 들어온 자녀에게 부모가 좀 따뜻하게 대해줘야 하는 이유이다.
불경기 중에도 취업에 성공한 젊은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전공이 재정이나 컴퓨터 등 인기 분야인 경우이다. 다음은 인맥이다. 대학 재학 때부터 인턴십이나 클럽활동을 하면서 인맥을 구축해 놓은 학생들은 그 덕을 보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은 끈질김이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려야 원하는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제대 후 우드워드는 법대를 갈까, 취직을 할까 고민하다가 워싱턴 포스트 기자직에 원서를 냈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를 2주 테스트해본 후 기자 경험이 너무 없다는 이유로 그만 두게 했다. 그가 포스트에 채용된 것은 D.C. 지역의 한 주간지에 취직해 1년간 일을 한후 다시 구직원서를 제출했을 때였다. 그렇게 그는 그의 길을 찾았다.
졸업에서 취직으로 바로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 연결점을 찾지 못해 갓길을 헤매고 허허벌판을 맴도는 경험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 예정에 없던, 그래서 막막했던 길들이 신비롭게도 새 길로 이어지면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되는 경우는 많이 있다. 인생에서 항상 햇빛이 쨍쨍할 수는 없다. 햇볕만 내리 쪼인다면 그건 사막이 아닌가.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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