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순원씨는 중학교 때 학교 다니기가 싫었다고 한다. 사춘기의 방황이기도 했고, 학교가 너무 멀기도 했다. 대관령 아랫마을에서 강릉 시내까지 매일 30리를 걸어야 했다니 이해가 되기도 한다. 학교 가던 도중 툭하면 산으로 올라가 도시락만 까먹고 내려왔고, 나중에는 아예 집에서 나가지를 않았다. 배 아프다, 머리 아프다 … 핑계 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한숨이 깊었을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도 그가 마지못해 책가방을 들고 나오니 어머니가 지게작대기를 들고 마당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에 앞서 걸으며 산길 풀잎마다 맺힌 이슬을 작대기로 털어내 주었다. 그렇게 30분을 걸어 신작로에 다다르자 옷과 신발은 흠뻑 젖어있었다. 어머니는 품속에서 새 양말과 새 신발을 꺼내 아들에게 갈아 신겨주었다.
그의 어머니가 매일 이슬을 털어준 것은 아니었고, 가끔은 새벽에 나가 미리 이슬을 털어놓고 올 때도 있었다. 아무리 이슬을 털어도 아들의 옷과 신발은 결국 다 젖고 만다는 걸 어머니가 모를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어머니는 아들이 다른 길로 새지 않길 기도하듯 산길의 이슬을 털어주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6일, 5월의 첫째 목요일은 미국에서 전국 기도의 날이다. 그리고는 곧이어 어머니날이다. 시간적 우연한 연결이 기도와 어머니는 ‘하나’라는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전국 기도의 날을 맞아 USA 투데이와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92%는 신의 존재를 믿는다. 기도를 하면 신이 응답한다고 믿는 사람도 83%에 달한다. 한편 매일 기도를 하는 사람은 절반 정도(51%)라는 것이 다른 조사의 결과이다. 이들이 기도를 통해 가장 많이 간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안녕(72%)이라고 같은 조사에서 나타났다.
누군가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사람 중 가장 대표적인 집단은 ‘어머니’일 것이다. 한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나며 유년, 청소년, 성년으로 커가는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다. 어머니들은 신과 거래라도 하고 싶을 만큼 절박한 순간들에 부딪치곤 한다. 깊고 간절한 사랑은 기도를 부른다.
지인 중에 아들 셋을 잘 키운 노부부가 있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아들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부모에 대한 효심도 지극하다. 부모 속 한번 안 썩이고 자란 모범생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아시안이 드물던 이민 초기, 큰 아들은 학교에만 가면 놀림을 받았고 그때마다 아이들을 때려눕혀서 사흘이 멀다 하고 정학을 받았다. 체격이 좋았던 막내아들은 아시안 갱에 휩쓸려 대학도 제대로 못 갈 처지가 되었다.
아들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 졸이던 시절 그 어머니가 기댈 것은 기도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항시 지켜본 아들들은 곁길로 빠지지 않았다. “기도를 먹고 자라는 아이는 다르다"는 것이 그 어머니의 확신이다.
사람은 ‘손길’을 먹고 산다.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손길이다. 미숙아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었다. 인큐베이터의 환경을 똑같이 한 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에는 한 가지를 더했다. 하루에 세 번씩 간호사가 아기의 몸을 쓰다듬어주는 것이었다. 이 그룹의 아기들이 몸무게가 더 빨리 늘고 더 빨리 인큐베이터에서 나올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고아원 아기들과 비행여성 보호소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었다. 먹는 것은 비슷한데 고아원 아기들은 개별적 관심을 받지 못했고, 보호소 엄마들은 아기에게 1대1의 관심을 주었다. 정신적 손길이다. 예상대로 후자의 아기들이 건강하게 자라났다.
기도는 영혼의 손길이다. 자녀는 그 손길을 영혼으로 느낀다. 기도하듯 산길 이슬을 털어준 어머니는 “후에도 아들이 이런저런 일로 방황할 때마다 마음의 이슬밭길을 털어주었다. 이제까지 내가 걸어온 길이 그랬다"고 이순원 씨는 썼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마음은 어머니의 사랑, 기도이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자녀를 위해 오늘도 “…발 앞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등 뒤에서 불고/얼굴에는 해가 비치기를…"<켈트족 기도문> 각자의 언어와 종교로 기도한다. 덕분에 우리가 있다. 어머니날에 어머니께 감사한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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