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에 배가 출출해 아내와 함께 동네 랄프스마켓에 갔다가 계산대에 진열된 잡지들의 표지를 보니 바싹 마른 앤젤리나 졸리와 새라 제시카 파커의 사진이 실렸다. 졸리 사진에는 93파운드라는 체중표기와 함께 ‘굶어 죽는다’라는 제목이 제시카 파커 사진에는 96파운드의 ‘거식증자’라는 제목이 각기 붙어 있었다.
가십 잡지들이 두 인기 여배우들의 체중을 놓고 과대포장한 감이 있긴 하지만 두 배우를 실제로 몇 번 만난 나로서도 이들이 엄청나게 말랐다는 점만은 잘 안다. 특히 제시카 파커는 보기 흉할 정도로 말라 저래 가지고 어떻게 배우생활 할까 하는 우려마저 했을 정도다. 반면 졸리는 말랐지만 예쁘게 말랐다.
남진이는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라고 노래했지만 그건 괜한 소리고 나를 비롯해서 예쁜 여자 싫다고 할 남자는 한 명도 없다. 여자들이 꼭 남자들을 위해서 얼굴과 몸매를 예쁘고 날씬하게 가꾸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자에게서 미란 우선 외양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요즘 여자들은 장작개비처럼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미인의 가장 근본적인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TV와 신문 및 빌보드에 살 빼는 약과 기구 등의 광고가 범람하는 것도 이런 여자들의 욕망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런 사회적 현상에 관해 얼마 전 USA 투데이는 ‘아시아 여성들의 과격한 다이어트 방법’이라는 제하에 홍콩과 서울과 도쿄 등지의 여성들의 극단적인 다이어트 방법을 보도했다. 글은 이들 여성들의 체중 매직넘버는 100파운드라며 홍콩의 일부 여자들은 체중 감소를 위해 기생충 까지 먹는다고 말했다.
글은 또 한국의 한 덕성여대생(25)을 인터뷰, 키 5피트4인치 체중 150파운드의 이 학생은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이미 10파운드를 뺐는데 앞으로 22파운드를 더 감량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고 이 학생의 말을 인용, 체중은 취업과도 관계가 있다고 썼다.
신문은 이어 여자들이 날씬해지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또래의 압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로 인해 살빼기센터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고 덧붙였다.
거식증은 심하면 사망까지 유발하는데 남매 보컬듀오 카펜터스의 캐런은 이 병으로 32세에 사망했다. 그리고 옛날 나의 신문사 한 후배기자는 아내(춘향이처럼 예쁘게 생겼었다)의 거식증을 견디다 못해 이혼까지 했다.
나는 얼마 전 이곳서 열린 LA 한국영화제에 참석차 온 ‘식객 2’의 김정은 및 정창화 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관계자 일행과 저녁을 먹은 적이 있다. 나는 장작개비처럼 마른 김정은에게 “배우들은 다 그렇게 말라야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는 “저 안 말랐어요”라며 우겨댔다.
한 자리에 있던 조희문 한국 영진위 위원장이 “한국에서는 지금 어른들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살 빼느라 난리들”이라고 알려줬다. 이제 나라가 먹고 살만 하니까 외모에 신경을 쓰는가 보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현재 LA카운티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오는 5월9일까지) 르느와르 전시회에서 본 발가벗은 여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전시회에는 ‘바위 위의 멱 감는 여자’(사진) 등 나체로 목욕하는 여자들의 그림이 많은데 여자들이 하나 같이 풍만한 몸들이다.
요즘 같으면 뚱뚱하다고 해야 할 몸들인데 나는 이 여자들의 살색으로 채색된 부피 있는 솜사탕 같은 나신을 감상하면서 그들이 그림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과 함께 매우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꼈다.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린 것으로 벗은 여인의 실팍한 엉덩이에서 탐스런 허벅지로 넘어가는 커브가 감각적으로 아름답다. 이런 관능미는 솟아오른 유방과 붉은 입술과 뺨 그리고 튼튼한 팔과 뱃살 근육에서 터질듯이 감지됐는데 고상한 그림을 보면서 선정성을 느끼는 내가 탕자처럼 생각돼 공연히 주위를 둘러보기까지 했다.
여인들이 이브처럼 부끄러움 없이 내보이는 육체는 손가락으로 누르면 금방 터져버릴 것처럼 잘 익은 수밀도와도 같았는데 여자들뿐만 아니라 나는 르느와르의 그림들을 보면 둥그런 원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르느와르의 모델들이 다 실제로 그림처럼 풍만한 육체를 지녔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르느와르는 모델들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 풍요와 다산 같은 시간을 초월한 여성의 본질을 묘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며칠 전 인터뷰 차 만난 독일계 수퍼모델 하이디 클룸이 전하는 미를 위한 세 가지 팁을 소개한다. ‘물을 많이 마시고 정말로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라’. 그런데 르느와르가 바싹 마른 요즘 여자들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박흥진 /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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