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화가였던 히틀러는 음악이 가지고 있는 감정적 힘을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자기처럼 반유대주의자인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해 전당대회를 비롯해 선동과 사기 진작 등 갖가지 목적으로 이를 사용했다.
유대인 수용소에 내달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바그너의 음악이었고 유대인들은 이 음악을 들으며 개스실로 걸어 들어갔다. 이스라엘에서 지금도 바그너의 음악이 연주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음악을 사랑할 줄 아는 히틀러는 동시에 그것을 핍박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가 ‘타락한 음악’이라는 딱지를 붙여 나치제국으로부터 추방시킨 음악은 유대인 작곡가들의 음악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훌륭한 유대인 작곡가들은 해외로 도주하거나 수용소에 감금됐고 그들의 음악은 금지곡이 되고 말았다.
이런 음악가들 중 대표적인 사람들이 베르톨트 골트슈미트와 에른스트 크레넥 그리고 에릭 볼프강 콘골트 등이다. 이들의 음악은 아방가르드적이어서 히틀러의 미움을 더 샀는데 크레넥처럼 미국으로 이주한 콘골트는 할리웃의 명 영화음악 작곡가로 활동했다.
콘콜트의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이 마치 교향곡과도 같은 에롤 플린이 나오는 스와시버클러 ‘로빈 후드의 모험’(1938)의 음악으로 그는 할리웃의 영화음악의 미래를 구축한 사람이다.
현재 LA 다운타운의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언에서 공연중인 3막짜리 오페라 ‘낙인찍힌 자’(The Stigmatized)의 작곡가 프란츠 슈레커도 ‘타락한 음악’의 작곡가로 낙인이 찍혀 작품 활동이 중단된 사람이다.
오스트리아인으로 아버지가 유대인이었던 슈레커(1878~1934)는 작고가요 지휘자이자 선생으로 전 유럽에서 존경을 받던 작곡가였다. 그는 9편의 오페라로 유명한데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몰락했다.
그의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낙인찍힌 자’로 이 오페라는 1918년 독일에서 초연돼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이 오페라는 쇤버그의 스승이자 후에 말러의 부인이 된 알마를 깊이 짝사랑했던 후기 낭만파 작곡가로 역시 오스트리아인인 젬린스키가 자기 오페라용으로 슈레커에게 가사 집필을 의뢰했던 것으로 슈레커가 마음을 바꿔 자기 오페라용으로 간직했다. 그런데 슈레커는 한 때 알마의 애인이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제노아. 자기를 혐오하는 꼽추 귀족 알비아노 살바고와 그가 사랑하는 아름답고 정열적인 화가 칼로타 나르디(사진) 그리고 냉정한 바람둥이 백작 비텔로조 타마레의 삼각관계와 비극적 종말이 ‘낙인찍힌 자’의 중심 플롯으로 변심한 ‘미녀와 야수’의 얘기라고 해도 되겠다.
이 오페라는 이런 주제를 통해 미와 예술의 진정한 뜻을 탐구하고 도덕의 타락과 권력의 남용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폭로하고 있다. 시간대는 비록 16세기지만 내용은 슈레커가 산 세기말의 징조인 타락과 방종을 그렸는데 특히 영혼과 육체의 아름다움이 정신적 타락과 힘의 남용으로 유린당하는 모습을 강렬하고 통절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미와 지성을 함께 지닌 오페라다.
지난 18일 오페라를 보면서(미국 최초 공연) 가사가 뛰어나게 아름답고 깊이가 있다고 느꼈다. 음악은 바그너와 이탈리아 오페라와 후기 낭만파와 현대음악의 요소를 혼성한 것 같았다. 매우 서정적이요 아름다우면서도 복잡해 미니 바그너의 작품과도 같았다. 특히 잔 물결치는 미풍과도 같은 서곡과 칼로타가 1막과 3막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아름답다.
이 오페라는 바그너의 ‘신들의 황혼’이 역시 파빌리언에서 공연되고 있는 중에 공연돼 경사진 무대의 회전하는 큰 디스크세트를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연출가 이언 저지는 이 때문인지 경제적으로 자체 세트 없이 텅 빈 무대에 작품을 올렸다.
이런 공허를 눈부시도록 환상적으로 채워준 것이 비디오 아티스트 웬달 K. 해링턴의 영상 투사로 묘사되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영상 이미지들이었다. 무대 뒤의 스크린 위에 사진과 그림 등으로 경치와 건물과 도시 풍경 등을 투사해 극의 내용을 받쳐 줘 마치 음향 그림을 보는 듯한 마법감에 빠져들었다.
이는 또한 영화를 보는 것과도 같았는데 겹치는 대사와 함께 장면 묘사 등이 영화적 처리여서 오페라를 영화로 보는 느낌이다.
두 주인공 중 무대를 압도한 사람이 칼로타 역의 아냐 캄페. 힘차고 아름다운 음성이다. 로버트 부르베이커가 노래로 표현하는 알비아노는 가슴이 아프도록 처절했다. 둘은 호흡이 맞는 열연을 했다.
LA오페라 상임지휘자 제임스 콘론의 바톤 하에 오케스트라는 맑고 정열적이요 역동감 있는 연주를 했다. 극 중에는 나체의 여자를 겁탈하는 노골적인 섹스 신이 있다. 24일 하오 7시30분 마지막 공연이 있다.
박흥진 / 편집위원
hj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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