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2학년 부모들은 모두 예민해요. (아이들) 학교 문제는 서로 안 물어보지요"
대학 진학생 딸을 둔 한 주부의 말이다. UC 합격자 발표가 끝나고 사립대학 합격통보가 시작된 요즈음 진학생 가정의 일기는 예측불허다. 지원한 대학들에서 속속 도착하는 합격통보, 불합격 통보에 따라 집안 분위기는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한다.
게다가 학생마다 실력이 다르고 기대치가 다르니 제3자는 섣불리 축하하기도 위로하기도 어렵다. UC 어느 한군데서 합격한 것만으로 환호하는 학생·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UC 합격은 기본이고 아이비리그 통보가 늦어져 불안하다며 애태우는 가정들도 있다. 입학 경쟁이 해가 갈수록 치열해지니 낙심하는 학생들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자녀가 어느 대학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어느 대학’이 일생일대의 중대사에 속하는 사회 분위기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에 살면서 가끔 전혀 다른 문화를 접한다. 지난해 아들을 대학에 보낸 한 주부는 아들의 백인 친구가 대입원서를 내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은 공부를 잘 하는 편이었다. 몇몇 UC 대학을 포함해 여러 대학에서 합격통지를 받았었다. 아들의 친구는 그 보다 더 실력이 나은 학생이었다.
그런 학생의 엄마가 “아들을 커뮤니티 칼리지에 보낸다"고 하니 ‘한국엄마’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백인 엄마의 설명은 이랬다.
“아이가 뭘 (공부)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우선 커뮤니티 칼리지 다니다가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때 대학에 가라고 했지요"
미국에서 대대로 살아온 백인 중산층 가정과 이민 1세인 한인 가정은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다. 백인 가정이 정서적으로 여유롭다면 이민가정은 치열하고 절박하다. 남보다 몇 배를 뛰고, 몇 발짝이라도 앞서지 않으면 불안하다. 거기에 남다른 교육열이 유전인자처럼 각인된 민족이니 자녀교육에 관한한 ‘여유’는 금기다.
대학진학과 관련, 우리는 출발점이 다르다. 앞의 백인 엄마가 ‘아이’를 관심의 출발점으로 한다면 보통의 한인부모들은 ‘학교’에서 출발한다. 전자는 아이의 적성, 실력, 정신적 성숙도를 보고 그에 맞게 학교를 선택한다면 후자는 학교가 먼저 정해지고 거기에 아이가 맞춰진다. ‘최소한 어느 대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사교육, 특별활동, 자원봉사들이 동원된다. 꼴찌로라도 비집고 들어가면 성공이라는 생각이다.
대학진학은 우리에게 순위를 향한 높이뛰기 같다. 공식적 순위는 없다 해도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비공식적 순위에 따라 자녀의 성적으로 가능한 제일 꼭대기 학교를 목표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덕분에 명문대학마다 한인학생들이 많고, 그들이 각계에 진출해 한인사회를 빛내고 있다. 실력이 일류인 학생은 일류대학에 들어가 일류 교육을 받고 사회의 일류 인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학생들은 소수이다. 실력과 적성, 재능이 제각각인 학생들을 모두 ‘일류대학’이라는 한가지 틀에 밀어 넣으려는 데서 부작용이 발생한다. 고교 카운슬러로 오래 일했던 한 교육가는 이런 지적을 했다.
“아이비리그 들어가도 어물어물하다 졸업하면 직장도 못 잡아요. 그래서 뒤늦게 ‘초등학교 교사 하겠다’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초등학교 교사는 훌륭한 직업이지요. 하지만 교사가 될 거면 애초에 캘스테이트 대학에 갔었어야지요. 그랬다면 학비도 덜 들고 교사훈련도 더 잘 받았을 텐데 말입니다"
한인타운에서 흔히 보는 명문대학 출신 SAT 학원 강사들도 비슷한 경우이다.
17살·18살은 아직 설익은 나이다. 집 떠나 대학에서 스스로를 관리할 만큼 성숙한 학생도 있고 그렇지 못한 학생도 있다. 대단히 학구적인 학생도 있고 재능이나 적성이 일반 대학과는 거리가 먼 학생도 있다. 하나의 틀에 맞추기에는 개인적 편차가 너무 크다.
대학합격은 메달획득이 아니다. 메달을 목에 걸고 내려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자녀에게 맞는, 자녀가 감당할 만한 대학이 길게 보면 진짜 ‘일류’대학이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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