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막 아내가 끓여준 떡만두국에 3개월 전에 만든 맛있는 무김치를 먹고 차 한 잔을 들고 서재에 나와서 이글을 씁니다라고 시작하는 메일을 받았다. 샌 개브리얼에 사는 독자 강창욱씨가 보낸 글이다.
그는 1966년 6월 서울에서 결혼하고 67년 11월에 미국에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70대 중반인 그가 메일을 보낸 이유는 글의 제목 ‘아내자랑’으로 분명했다. “아내나 자식 자랑을 하면 좀 모자라는 사람이라고들 말하지만, 이제쯤은 아내도 칭찬을 좀 해주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 됩니다라고 그는 썼다.
지난 토요일 그는 정원 일을 하고 샤워를 하려는 데 아내가 머리부터 깎자고 한 것이 문득 지난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내에게 머리를 맡기고 앉아 있다 보니 자신이 지난 40년 한번도 이발소에 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미국에 도착해서부터 이발을 도맡았던 아내는 3년 전 무릎수술을 받고 몸이 불편한 때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유창한 영어는 못 되지만 용감하게 하니 막히는 데가 없는 아내는 페인트 사업을 해온 그와는 별도로 봉제공장 일부터 시작해 세탁소 에이전시도 차리고 요구르트 가게도 운영하며 쉴 새 없이 일을 했다. 그렇게 세 아들을 공부시키고 짝 지워 독립시킨 아내는 그뿐이 아니다. “교회에서 수십년 부엌일을 해서 이제는 무슨 요리든 다”하는 만능 요리사이기도 하다.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입니다. 좋은 아내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 합니다라고 그는 글을 마쳤다.
직장일, 집안일, 자녀교육은 물론 식구들 이발까지 손수 하는 억척스럽고 알뜰한 아내, 평생을 열심히 살아내고 여생을 오순도순 보내는 정다운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노년이 되면서 사이가 좋아졌다는 부부들이 많다. 항상 잉꼬 같은 부부들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부부가 평생을 살자면 당장 갈라설 것 같은 위기를 몇번씩 넘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노년이 되면 그런 갈등들이 스러지고 부부 사이가 다정해진다는 것이다. 자연히 행복감이 높아진다. 노년과 결혼, 행복 사이에는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있다.
우선 결혼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다. 모든 결혼이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결혼한 사람이 혼자 사는 사람보다 행복하다는 것은 관련 연구들에서 공통된 결론이다.
그래서 나오는 의문은 “결혼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행복한 사람이 결혼 가능성이 더 높은가이다. 둘 다가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노년이 되면 전자의 비중이 커진다. 사회의 뒤안길로 밀려나 고독한 노년에는 곁에서 같이 지내는 동반자의 존재가 행복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부부로 늙어가는 사람은 홀로 늙는 사람에 비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하다.
그런가 하면 사람이 일생 중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시기는 60대부터 70대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80여 개국 200만 명을 대상으로 사회학, 생물학, 심리학 측면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행복감은 나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젊은 시절이 가장 행복할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높은 목표점과 기대감으로 스스로를 들들 볶는 초·중년과 달리 노년은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시기이다. 생활태도가 현실적이 되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며, 심리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삶의 조건이 나아졌다기보다 기대치를 낮추니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이다.
노년에 부부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남성의 태도변화와 상관이 있다. 젊어서는 관심이 온통 밖으로만 쏠리던 남성들이 은퇴해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의 소중함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삼시세끼 먹여주고 건강 보살펴주고 말동무 되어주는 사람이 아내 외에 누가 있겠는가. 70대의 한 주부는 말한다.
“남편들이 60대부터 확실히 달라져요. 아내들에게 의존하고 다정해지지요. 호르몬 영향 탓도 있다고는 하지만 우선 주변에 사람이 없으니까요. 남성들은 나이 들면 친구가 없더군요
남성들의 일 중심 대인관계는 은퇴와 함께 끝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어서는 모임에 아내가 따라나서면 귀찮아하던 남편들이 은퇴 후에는 아내만 졸졸 따라 다닌다는 것이다.
노년기가 길어지고 있다. 은퇴자금, 건강 모두 중요하지만 노후대책 1호는 확실히 챙기자. 부부사이에 아픈 응어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내자랑’ - 돈 안드는 노후대책이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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