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술의 거장으로 꼽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지난달 화제가 되었었다. 그가 60세 때 제작한 청동조각 ‘걷는 사람 1’이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6,500만 파운드(1억430만 달러)라는 거액에 팔린 때문이다.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은 6년 전 파블로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1906년 작)이 1억420만 달러에 팔린 것이었는데, 이번에 그 기록이 깨어졌다.
자코메티(1901~1966)는 스위스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가였다. 인체 조각상이 대표적인 데 그의 ‘사람들’은 사람의 몸을 그대로 닮아있지 않다. 막대기처럼 가늘고 기다란 형상이어서 공간에 굵은 선을 그어 넣은 듯한 모양이다.‘걷는 사람’ 역시 183cm 실물크기의 뼈대뿐인 남성이 한발을 내딛은 모습이다. 극도로 절제되고 단순화한 형상이다.
자코메티는 조각 속에 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영혼으로서의 존재를 담아내려 했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무게감 없는 존재들, 외부에서 충격이 가해지면 그대로 부셔져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존재들이다. 부조리한 현실 속의 고독한 인간상을 빚어내면서 그 자신 조각처럼 비쩍 마른 모습으로 은둔자처럼 살다가 생을 마쳤다.
50년이 지난 지금 그가 다시 작업을 한다면 어떨까. 그의 ‘사람들’은 더 가늘어지고 더 위태위태해진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사람은 자연의 일부로 대지에 발 딛고 살아야 건강한 법인데, 산업화·정보화로 인공의 환경으로 내몰리면서 점점 더 고립되고 불안정해지는 것 같다. 어설프게 만든 장난감처럼 사람들이 쉽게 망가지곤 한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사건으로 한국이 분노와 불안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딸 가진 부모들은 매일 저녁 아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고, 사건발생지인 부산 재개발 지구 같이 치안이 부실한 빈민촌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까지 겹쳐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피의자는 자신이 친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였다는 사실을 10대 초반에 알고는 그때부터 망가졌다고 한다. 외부적 충격과 열악한 환경을 감당하기에 그의 타고난 존재는 너무 부실해서 그대로 부셔져버린, 영혼이 파괴되어 버린 케이스로 보인다. 스스로 감당 못하는 분노와 좌절을 그는 타인에 대한 무참한 공격으로 터트린 것 같다.
반대로 가장 유복한 환경에서 존재가 맥없이 무너지는 케이스들도 있다. 최근 문제로 떠오른 아이비리그 대학생 자살사건들이 한 예다.
지난 한달 사이 코넬에서는 3명이 자살을 했다. 하버드에서는 지난해 봄학기 4명이 자살하는 등 대학 캠퍼스에서 자살사건이 그치지 않는다. 한인사회에서도 명문대학에 입학해 집안의 자랑이었던 2세들이 돌연 목숨을 끊어 충격이 된 사례가 여럿 있었다.
죽음마다 제각기 아픈 사연이 있고, 대부분 우울증이 한 원인으로 진단되지만 그에 앞서 보편적으로 지적되는 것이 있다. 요즘 중산층 이상 가정 자녀들은 너무 편한 환경에서 너무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유약하다는 지적이다. 어려움에 맞서본 적이 없는 ‘온실 속 화초’들이어서 외부 충격이 조금만 강하면 버티지를 못한다. 감당 안되는 좌절과 절망감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터트리는 것이 자살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상황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하와이 주의 카우아이 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있었다. 1950년대 중반에 태어난 아이들을 출생 때부터 30년간 그 삶을 추적한 실험이다.
카우아이의 사회 환경은 열악했다. 가난하고 알콜 중독이 만연하고 가정불화와 이혼이 흔해서 온전한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다. 예상대로 조사 대상자의 2/3는 망가졌다. 약물중독이나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범죄에 빠져든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이 모두를 무너트린 것은 아니었다. 1/3 가량은 꿋꿋하게 자라나 건강한 사회인이 되었다. 역경 앞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버텨내는 힘을 심리학자들은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른다.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며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세가 그 요인이 된다.
자코메티의 조각 같은 위태로운 존재들이 살아내는 길은 두가지이다. 회복탄력성으로 스스로 버텨내거나 누군가가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다. 가늘고 기다란 그의 조각에 버팀목 하나 세우면 훨씬 안정감이 있을 것이다. 관심과 사랑이라는 버팀목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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