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의 눈부신 경기와 금메달을 다는 모습과 온 세계의 극찬으로 나도 가슴이 터질 듯한 감격과 기쁨을 맛보았다. 한편 패자인 마오 아사다의 눈물을 보면서 안쓰러워 가슴이 쓰렸다. 우리 연아처럼 귀여운 소녀 마오는 그 동안 연아와 경쟁해오며 한국 관중으로부터 단순히 스포츠 경기만이 아닌 불행한 근대사의 흔적을 의식해야 했는데 동갑내기 한국선수에게 져서 일본을 실망시켰으니 말이다. 이어서 3.1절을 맞으니 또 일본 생각을 하게 되어 옷설합을 열고 생각 날 때마다 꺼내 보라고 김상희 할머니가 두고 가신 옥색 치마 저고리를 만져 본다.
1991년 8월에 평양 출신의 김학순 할머니가 첫 번으로 정신대에 강제 동원되었던 과거를 한국 정신대대책협회에 신고한 이래 1992년 이곳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도 뜻있는 교포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정신대 자료집을 재편집하여 팔아서 만든 이익금을 급히 서울로 송금하여 밀린 집세 때문에 사무실 문을 닫게 된 한국 정신대 대책협회를 도왔고 그해 가을엔 황금주 할머니를 모셔와서 채널 4 TV에 인터뷰를 하게 했다. 일본 정부와 유엔에 보내는 호소문의 서명운동을 전개하여 이 지역 8천명의 서명을 받고 이듬해인 1993년 3.1절에는 흰옷을 입고 워싱턴 지역의 한인들과 함께 일본 대사관을 찾았던 기억이 새롭다. 조용한 매사추세츠 애브뉴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아가며 큰 플래카드(How many Korean women did you kill after sex slavery?)를 들고 일본 정부의 시인과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였던 행진은 그 후 긴 여정을 거치며 유엔인권위원회에 상정되어 조사되었고 미 국회의 동의안을 얻어내기까지 이어졌다.
미국의 주요 대학 100여개에서 초청을 받고 정신대 강제동원에 대한 강연을 하였던 김대실 박사의 저서 “침묵의 소리”에서 김 박사는 이런 일화를 소개했다. 책을 쓰기 위해 김학순 할머니를 찾았을 때 할머니는 기침을 연달아 해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김박사가 다음 날에 다시 오겠다고 하자 할머니는 “그냥 하자. 내 기침은 내 속에 맺혀 있는 한 때문에 나오는 것인데 금세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잡아떼던 일본 정부가 모호한 변명성 사과로 얼버무리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식주와 의료 문제를 겨우 해드린다고 해서 우리는 이 문제를 잊을 것인가?
1999년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있었던 정신대문제 심포지엄에 오셨던 김상희 할머니는 강당을 가득 채운 미국인 청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앓던 내가 이번 모임에 오겠다고 하니 의사가 죽을지도 모르는 모험이니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같은 이차대전 전쟁에서 당한 유대사람들의 피해를 세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이곳에서 열리는 이 모임에서 내가 겪은 사정을 세계에 알리는 일인데 죽더라도 가겠다고 하고 왔습니다. 정신대 문제를 우리 할머니들 일로만 밀쳐 버리지 말고 진상을 조사해서 바로 알리고 기록하여 남겨야 합니다.”
나치의 만행에 희생된 유태인의 피해를 철저히 조사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헌법을 고쳐가며 피해국에게 사과와 보상을 해온 독일은 90년대 초 러시아 붕괴 후 미국에 입국하였던 많은 유대계 러시아인들을 위한 보상금까지 미국 정부에 맡겨서 전달하는 등 인류 비극의 재현을 막으려는 최대의 의지를 보였고 지금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뭉쳐서 유럽 경제 공동체로 발을 맞추어 보다 나은 더블어의 삶을 꾀하고 있다.
인권 변호사 베리 피셔는 정신대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동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2차 대전이후 서구의 나라들이 함께 나서서 나치 피해를 고발하고 세계의 유태인들이 열심히 모은 거금을 써서 스위스 은행으로 간 피해자들의 재산을 찾는 소송을 하고 이기기까지 4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관련 서류조차 잠가둔 모르쇠 일본을 상대로 한국이 이렇게 약한 소리로 언제 시인(교과서 서술, 기념관)과 사과와 보상을 받겠느냐? 그리고 할머니들은 저렇게 죽어가고 있는데...”
그렇다. 김학순 할머니는 신고 후 몇 년 안에, 중학교 교육까지 받은 똑똑한 김상희 할머니는 2005년 1월에 돌아 가셨다. 활달한 황금주 할머니는 치매인 채로 아직 겨우 살아계시지만 이제 겨우 오십여 분의 남은 할머니들은 몇 년 사이에 다들 돌아가실 것이다. 지구상에서 인류가 저지른 가장 몰염치스런 만행을 조직적으로 계획하고 철저히 진행시켰던 일본 정부 앞에서 한국인은 국제화 시대와 제 역사 바로 알기를 착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아시아의 진정한 국제화를 위해서 그들은 준비가 되어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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