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젊은 선수들의 꾸준한 연습, 새로 개발된 기술과 아낌없는 경제적 지원이 함께 일구어낸 쾌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하기 힘들었던 일들이다. 한국사람인 것이 자랑스럽다. 선수들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낸다.
부모 세대 같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자란 대부분의 50대들은 외국의 젊은이들이 하던 스포츠는 흉내도 못 내보고 자라났다. 그래도 나는 산동네에서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삼각산 밑자락, 세검정에서 자랐던 나는 어린 시절 겨울만 되면 소규모 동네 올림픽(?)을 하며 즐겼다. 올림픽은 눈이 많이 쌓인 다음에 시작되었다. 올림픽 마스코트는 눈사람. 우리는 나무 가지나 숯으로 눈사람 얼굴에 코와 눈, 눈썹을 멋있게 장식해주었고 모자도 씌워 주었다.
산동네 겨울 올림픽의 인기 종목은 대나무 스키 타기였다. 대나무를 구하느라 멀쩡한 비닐우산을 일부러 망가뜨린 다음 어머니에게 허락을 받았다. 그리곤 우산의 기둥이었던 대나무를 반으로 토막을 냈다. 그 다음에는 대나무 막대 한 쪽을 연탄불에 달구어서 위로 휘어지도록 했다. 휜 쪽이 대나무 스키의 앞이 되는 것이었다.
스키를 신발로 밟고 반들반들해진 눈 언덕을 내려가는 것이 우리의 시합이었다. 스키를 묶는 바인더도 없으니 나둥그러지기 일쑤였고, 그렇게 스키에서 나둥그러져 우리의 관중이었던 바둑이와 부딪치게 되면 시합에서 지는 것이었다. 나둥그러지는 아이들도, 그들을 내려다보는 아이들도 얼굴에는 장난기와 웃음꽃이 만발했다.
시간이 지나 스키 타기가 시큰둥해지면 우리는 꽁꽁 얼어붙은 개울로 갔다. 동네 아이들은 갖가지 모양의 썰매를 가지고 모였다. 대부분 철사로 썰매의 날을 만들었지만, 어쩌다 여유 있는 집 아이들은 굵은 쇠 날로 된 썰매를 만들어왔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철사로 된 썰매는 아무리 힘을 써도 제일 앞서 달리기는 틀렸다.
썰매를 타다가 넘어져 혹이 생기고 얼음이 깨어져 발이 얼음물에 빠지기 일쑤였다. 모두 발이 얼음물로 젖기 시작하면 올림픽 성화 같은 모닥불을 피웠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불을 쬐면서 양말을 말렸다. 그러다 불똥이 튀면 양말에 구멍은 왜 그렇게 잘 나는지, 어머니에게 혼 날일이 걱정이었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저녁놀과 함께 밀려오면 우리들은 까치발을 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 다음 날 일어나보면 양말은 따뜻한 난로 옆에 걸려 있고 구멍은 어머니의 솜씨로 완벽하게 꿰매져 있곤 하였다.
동네의 경제적 형편이 좋아지기 시작하자 동네 올림픽에 스피드 스케이트와 피겨 스케이트가 새로운 인기 종목으로 등장하였다. 새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도 약간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청계천에 있는 운동구점에서 중고 스케이트들을 사서 신었다. 신발 가죽이 헐었던 중고 스케이트를 들고 나는 얼마나 좋았던지 방안에서 이불을 깔아놓고 스케이트 타는 흉내를 냈었다.
경복궁의 작은 호수를 얼려서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처음 빙판 지치는 법을 배우던 날, 엉덩이는 온통 멍으로 물들었다. 그 후에 나의 스케이트 실력은 일취월장 하였지만 스케이트를 제대로 배운 기호에게는 언제나 코너링에서 떨어졌다. 아무리 기호를 따라 잡으려 해도 반짝이는 날의 기호의 스케이트는 언제나 나보다 빨랐고 나의 발꿈치에는 물집만 잡혔다.
그래도 경복궁 스케이트장에서 하루 종일 놀고 난 뒤, 차비를 떡볶기와 오뎅으로 바꿔치기 하고 터벅거리며 집으로 걸어가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그 당시도 피겨 스케이팅은 빙판의 꽃이었다. 하얀 피겨스케이트를 춤추듯이 타는 영희는 언제나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나에게 가끔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시는 80대 중반의 순자 할머니는 평양이 고향인데 그 옛날 어린 시절 대동강에서 피겨 스케이트를 타셨단다. 할머니께 “정말 인기가 좋았겠어요!” 하고 넌지시 말을 건네니 옛 영광을 상기하시는 지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오른다. 두 팔을 들고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려 보시는 할머니의 자세는 아직도 꼿꼿하기만 하다.
김홍식 /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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