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난여름 처음으로 한국 방문을 생각했다. 마침 메릴랜드 한인회와 경남교육청이 주최하는 모국 방문 프로그램을 보고 허리띠를 졸라매어 두 아이를 한국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프로그램을 검토한 결과 꼭 필요한 곳을 요소요소 경험할 수 있는데다 부모와 함께 한국을 방문해서는 들를 수 없는 곳들이라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격려할 수 있었다. 엄마와 처음 떨어지는 아이들이 안심이 안 되어 마음 졸이며 한국인으로서의 에티켓을 설명하고 남과의 생활에 대한 잔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주지시킨 후에 한국으로 보냈다.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한국말을 잘해서 새로 만나는 친구들에게 자기 의사표현을 잘 하고 한국의 어디를 가도 길을 물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걱정과 달리 내 아이들은 한국 문화체험을 기대이상으로 만족해했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결과를 주었다.
겨울 방학이 되어 한국의 학생들이 이제 미국 체험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살인적인 나의 스케줄을 포기하고 한국 아이들을 우리 집에 데리고 왔다. 제일 처음 그들의 부모와 다른 나의 생활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하고 자기들이 해야 하는 일과 부모가 해주어야 할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익숙한 일들이라 제법 어른스럽게 한국에서 온 아이들에게 설명도 곁들인다. 밥 먹은 후 그릇은 싱크에 자기가 넣기, 설거지는 돌아가면서 기쁜 마음으로 하기, 자기 옷은 자기가 빨기 등.
한인회에서 워싱턴 견학, 아이비리그 대학 방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부모들이 해야 할 일들을 대신해 주어서 많은 시간을 절약했다. 여행은 물론이고 바쁜 미국 생활에 저녁 식사 문제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헤아려 아이들에게 항상 저녁식사까지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제법 아이들이 친해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어할 때가 됐다. 90년 만에 처음이라는 눈이 밤낮으로 내렸고 난생처음 보는 눈에 아이들은 연일 환호성이었다.
사진을 찍어 한국의 친구들에게 보여준다고 야단법석들이었다. 마당에 쌓인 눈 속에서 동굴도 파고 눈사람도 만드는 와중에 눈으로 인해 비행기가 연기가 되어 덤으로 5일을 더 우리 집에 있게 된 아이들은 매일 즐거운 놀이에 지칠 줄을 몰랐다.
게다가 전기가 모두 나가 버린 우리 집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끓여 먹던 라면은 왜 그리 맛있었는지. 그 와중에도 아이들과 삼겹살을 구워먹고 김치를 넣은 비빔밥을 먹으면서 한국에 보낼 사진을 찍었다.
아침이 되어 가로수가 힘없이 쓰러져버린 집 앞에서 차를 빼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옆집 아저씨하고 더듬더듬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내가 웃으면서 “저 사람이 네 말을 알아듣니?” 하니까 “아니요.” 한다. 그럼 무슨 이야기를 했냐니까 그냥 생각나는 영어를 연습했다 한다. 엄마가 누구를 만나던지 영어로 이야길 해서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라고 했다나.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한 나하고 달리 우리 집 아이들은 사투리를 쓰는 한국 친구들의 말투를 따라 배우면서 즐거워하고 미국 음식이 먹고 싶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주변 음식점을 찾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사투리로 안내를 하였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선물을 사야 한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한국의 아이들과 이곳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의 문화 차이를 느꼈다. 언제나 남지 않게, 사치스럽지 않게, 절약하기를 강조하는 엄마의 강령을 따르는 우리 아이들과 사소한 실갱이를 벌이면서 선물을 사는 한국의 아이들이 참으로 의젓하고 귀여웠다.
이젠 돌아가야 하는 날이 오고 밤이 새도록 잠을 자지 않는 아이들. 나의 어릴 적, 사촌들과 날이 새도록 한 이야기 또 하고 하면서도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들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공항을 향해 가는 도중 서로 울지 않기를 약속하면서 길지 않은 만남에 대해 정리를 하였다. 몇 년이 지나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다시 만나길 약속하는 아이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면서 이런 많은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언제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정체성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칠 필요를 느낀다. 한국을 다녀온 후 내 아이들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한국에 가니 난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그러면 미국에서는 과연 미국인으로 대접 받으며 살고 있을까? 감정이 연약한 아이들이 그 혼란을 느끼기 전에 부모가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누구인가’의 문제, 그것을 알아서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부모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일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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