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항상 지나는 사거리가 있다. 2개 차선이던 길이 오른쪽 차선은 우회전 길, 왼쪽 차선은 직진 길로 갈라지는 구역이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보면 거의 예외 없이 오른쪽 차선에서 직진 차선으로 끼어드는 차들이 있다. 신호등이 빨강에서 초록으로 바뀌는 순간 쌩하고 앞으로 끼어든다. 직진 차선의 운전자는 평상 속도로 움직이는 데 반해 끼어들어야 하는 운전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신호가 바뀌는 순간을 기다리다가 0.1초도 지체 없이 급발진한 결과이다.
직진 차선의 운전자가 기득권자라면 옆 차선의 운전자는 그 자리를 빼앗으려는 자. 이미 차지한 자에 비해 빼앗으려는 자는 몇 배 더 무서운 집중력으로 전력투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영원한 1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이 진행되면서 흥미진진한 드라마들이 계속되고 있다. 스포츠는 인간이 몸으로 할 수 있는 특정한 기능을 그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놀이. 그럼으로써 ‘더 빠르고, 더 높고, 더 강하고’ 싶은 인간의 꿈을 펼쳐내는 놀이의 한마당이 올림픽인데, 그 결과가 항상 예측불허라는 점에서 스포츠는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은 재미를 준다.
이번에도 많은 자리바꿈이 있었다. 세계랭킹 1위들이 우수수 밑으로 떨어지고 멀리 뒤에 있던 신예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끼어들기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적 끼어들기의 주인공이 한국 선수일 때 우리는 짜릿한 감동에 젖는데 이번에 그 주역은 모태범과 이상화이다.
모태범은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이상화는 여자 500m에서 각각 세계 기록보유자인 제레미 위더스푼(캐나다)과 예니 볼프(독일)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이 종목 세계 랭킹 3위였던 이상화의 금메달도 ‘아시아 최초’ ‘한국 최초’로 의미가 크지만, 500m가 자기 종목이 아닌 랭킹 14위 모태범의 우승은 그야말로 ‘깜짝 금’이었다.
무명의 한국 젊은이들에게 추월당한 위더스푼은 9위, 볼프는 2위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렇다고 모태범과 이상화가 두 사람의 기록을 깬 것은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세계기록 보유자들이다. 이상화와 볼프의 성적 차이는 0.05초. 눈 한번 깜빡할까 말까한 순간이 금과 은을 갈랐다. 한마디로 피 말리는 전쟁이다.
한 분야에서 우뚝 서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은 신경과학자 대니얼 레비틴 박사의 이론이다. 그것이 달리기든, 스피드스케이팅이든, 수영이든 세계적 선수가 되려면 무의식 상태에서도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일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뇌신경에 각인되려면 1만 시간의 훈련이 기본이라는 것이다. 일주일에 20시간씩 잡으면 10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이런 각고의 훈련에 앞서 갖춰야 할 조건은 재능. 타고난 재능이 없으면 잠깐 심취할 수는 있어도 장기간의 집중은 불가능하다.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은 모두 재능과 훈련의 기본 조건을 갖춘 엘리트들. 소위 아웃라이어들이다. 불꽃 튀는 경쟁의 치열함은 당연하다. 게다가 과학적인 훈련과 장비가 동원되면서 이제 인간의 몸으로 거둘 수 있는 성적은 다 거두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더 이상은 아무리 훈련을 해도 신기록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발표된 한 보고서에 의하면 88 서울올림픽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 해 올림픽을 기점으로 신기록 도전이 벽에 부딪쳤다. 당시 육상부문에서 11개의 신기록이 세워졌는데 4개를 제외하면 그 기록들이 이제까지 깨어지지 못하고 있다.
2008년 올림픽에서 펠프스가 입었던 특수 수영복과 같은 첨단 기어나 약물 등 인위적 요소에 기댄다면 모를까 사람의 육체적 기량으로는 ‘100점 만점’에 거의 100점 수준이라는 것이다. 0.05초 차이로 메달이 갈리고, 기록 보유자가 하위로 밀려나는 일들은 그래서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승패를 가르는가. 궁극적으로 올림픽은 정신력의 대결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기하는 그 순간의 집중력,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몰입의 경지가 승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1등 보다는 1등을 빼앗으려는 자들의 집념이 더 치열한 것은 물론이다.
한국의 가수 비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 “120% 준비해야 무대에서 100%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티끌만한 방심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스포츠도, 인생도 결국은 정신력 싸움이다. 정신력이 메달을 좌우한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