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위에 서리가 덮인다는 뜻인 설상가상의 세상에 갇혀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창에 붙어 서서 눈에 휩쓸리는 바깥 풍경을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급기야 눈을 무겁게 이고 있던 뒷집의 전나무가 울타리를 넘어 우리집 데크를 부수며 쓰러졌다. 밑둥째 넘어져 푸우푸우, 남은 숨을 내쉬고 있는 그 성성한 나무의 주검 위로도 눈은 계속 퍼부었다.
한밤중 잠 속에서 느끼는 낯선 정적, 반사적으로 눈을 뜨니 정전이다. 모두가 잠든 밤에도 대기모드로 혹은 작동중이라는 작은 불빛으로 존재감을 알리던 전기가 흔적없다. 집안은 폭설에 덮인 밖의 세상처럼 마비상태로 변해갔다. 스산하게 식어가는 실내 공기 속에 습관적으로 빈 스위치를 올려보는 식구들, 하지만 집을 나간 전기는 이틀간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열한 살 되던 해에 우리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다. 팟,하고 눈을 찌를 것만 같이 밝혀지던 처음 불빛, 그 생경스러웠던 빛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늘 새로운 것의 출현은 옛것을 뒷전으로 밀어놓는 법, 오랜동안 안방을 차지했던 사기등잔은 툇마루 밑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등잔불이 침침한 빛이었다고 기억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등잔불을 좋아했다. 밤이 오고 어두워진 방안에 등잔을 밝히면 적당한 간격으로 물러나던 어둠, 시렁 아래 웃목으로 비켜 앉은 그 어둠이 함께 있어 더욱 아늑했던 밤을 좋아했다. 그 불 밑에서 표지가 닳고 내용도 다 외워버린 동화책을 다시 읽으며 하얀 신작로 끝 어디쯤에 있을 가보지 못한 세상을 동경해 보았다. 그것도 심드렁해지면 동생과 같이 그림자놀이를 했다. 등잔불과 바람벽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 토끼도 만들고 개도 만들던 밤, 동생은 여우와 늑대를 만들어 덤벼들고 아랫뜸의 누렁이는 내 편이 되어 컹컹 짖어댔다.
시골집 울안에는 수국나무가 많았다. 사람들은 하얀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 놓은 밥사발처럼 탐스럽게 피는 꽃을 사발꽃이라 불렀다. 하얗게 피기 시작해 파랗게 혹은 분홍빛으로 색깔을 바꿔가며 사발꽃이 피면 마루 끝에 남포등을 달지 않아도 우리집 마당이 환해졌다.
오일장에서 됫박으로 재어 팔던 석유를 정종병으로 사와 졸금졸금, 기름을 채운 다음 지푸라기로 마알갛게 닦은 유리를 끼고 삿갓뚜껑을 덮어 불을 붙이면 다소곳하게 빛을 내어주던 남포등, 그 남포등이 늦도록 켜지는 날은 집안에 대소사가 있는 날이었다. 와릉따릉-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 시끄럽던 풋바심날이나 고모가 시집가고 막내삼촌이 장가가던 날이었다.
그 남포등 자리에도 삼십촉짜리 알전구가 매달렸다. 서양에서 건너온 램프를 잘못 발음해 우리말로 굳어진 남포등, 그 남포등이 들어오기 이전에는 등롱이나 초롱을 사용했다. 할머니 따라 마실을 갈 때면 내가 제일 앞서고 할머니 손에 들린 초롱이 뒤를 서고 그 다음으로 할머니가 따라오셨다.
동네에 대소사를 치르는 집이 생기면 제일 먼저 준비하는 것이 며칠간의 밤을 밝힐 불빛을 모으는 일이었다. 빛을 보태고 일손을 보탬받아 대소사를 치른 주인은 답례로 얼마간의 돈을 내놓았다. 초롱계의 기금이 된 그 돈은 한여름 장마에 떠내려간 다릿목을 다시 세우고 상여같은 걸 보수하는 데 쓰여졌다. 전기가 들어오고 마루 끝에서 남포등이 사라진 동네엔 초롱계의 따뜻한 명맥도 끊어졌다. 초롱을 들고 오시던 무명치마 할머니들마저 모두 떠나신 지금, 내 기억 속의 그 동네엔 아직도 마루 끝에 걸린 남포등 하나가 까무룩히 불을 밝힌다.
저녁이 되자 눈이 멈췄다. 세상은 적막했다. 들리는 것이라곤 깃들 곳 없어 안타까워진 새소리가 전부였다. 처음 정전을 느꼈을 때 찾아왔던 마음의 소요도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가라앉았다. 차단된 컴퓨터와의 소통 때문에 좌불안석인 아이들을 데리고 눈을 치우러 나갔다.
폭설이 끝난 하늘엔 거짓말처럼 별들이 떠 있었다. 내 어릴적의 동네에 내려와 미루나무 우듬지 끝에 매달려 놀기도 하던 바로 그 별들이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건 하늘의 별들 뿐이었다.
초저녁에 유난히 밝게 뜨는 개밥바라기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허기진 개가 밭에 나간 주인이 돌아와 저녁밥 주기를 바라는 시간쯤에 뜨는 별이라 하여 개밥바라기별이라고 부르던 그 별이 거기 그대로 있다. 사람들은 별의 위치로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 달을 밥광주리로, 뿌연 구름떼같은 좀생이별들을 아이들로 비유하여 겨울 하늘에 달과 좀생이별의 간격이 멀면 다음 해에 풍년이 온다고 믿었고 또 가까우면 흉년이 온다고 믿었다. 밥광주리에는 관심없이 멀찌감치 떨어져 가는 배부른 아이들과 밥광주리에 바짝 따라가는 배고픈 아이들을 상상한 발상이 재미있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따뜻한 밥이 화두였던 시절, 사람들은 그렇게 별에게 길을 묻고 달에게 내일을 약속받으며 자연을 의지해 살아갔다. 느리고 소박했으나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세상은 변했다. 밝고 빠르고 편리해졌다. 해 있는 동안에 백리도 못가던 사람들이 이제는 같은 하루 해에 지구의 반대편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그 모든 속도의 뒷전에는 훼손당하는 자연이 있었고 몸살을 앓는 지구가 있었다. 마침내 열병을 앓던 지구가 스스로 제 몸의 온도를 낮추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폭설이나 폭우, 혹은 폭염이다. 북극에 잘 보관되어 있어야 할 한기주머니가 툭, 터져 버려 폭설로 뒤덮인 세상의 풍경이 의미하는 바를 잘 읽어야 하겠다.
나만의 컵을 사용한다거나 실내온도를 1도씩만 조절하고, 쓰지 않는 플러그를 뽑아 놓는 등의 일은 어렵지 않다. 그 작은 실천에 나무들이 살고 탄소발자국이 지워지고 전기소비가 줄어든다. 그리고 가끔은 하늘을 보자. 거기 떠 있는 별들의 안부를 물으며 밝고 빠른 세상의 빛에 시선을 빼앗겨버린 아이들에게 두어개의 별자리쯤은 일러두자. “저것은 개밥바라기별이란다. 같은 별이지만 새벽에 뜨면 샛별이라고 부른다. 부지런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별이란다. 저기 뽀얗게 뭉쳐 있는 좀생이별들처럼 너희들도 정답게 살아라.” 먼 훗날, 혹시 삶의 방향을 잃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서 찾아낸 별 이름 하나가 어떤 보석보다 더 값진 역할을 할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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