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추세츠 상원의원에 당선된 스캇 브라운의 인기가 대단하다. 미국의 정치명문이자 민주당의 거목이었던 에드워드 케네디의 반백년 아성을 무명의 공화당 후보로서 무너트렸으니 사건은 사건이었다. 미국인들의 인기 고정 프로그램인 SNL(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이 지난 주 그를 깜짝 손님으로 초대했을 정도이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보통사람들의 힘이다. 싸움이 되지 않는 싸움을 싸우게 만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그래서 도저히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세상을 마침내 바꿔내는 원천은 보통사람들의 힘이다.
이번 스캇 브라운의 승리도 ‘보통사람’의 쾌거였다. 공화당이 수십년 발도 들여놓지 못하던 민주당 철옹성을 주의원 경력이 고작인 그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보통사람으로서 그의 풋풋한 인간미 덕분이었다. 서민의 상징인 픽업트럭을 타고 주 전역을 누비며 ‘매서추세츠의 보통사람’임을 내세운 전략이 주효했다. 보통사람들은 보통사람에 환호하고,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기적이 또 한번 일어났다.
정치인들이 탯줄처럼 잡고 싶은 것, 기어이 가서 닿고 싶은 곳은 바로 보통사람들의 마음이다. 정치인들치고 보통사람 흉내 내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한국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매서추세츠의 선거이변에서 민심과의 거리를 느꼈는지 요즘 부쩍 ‘보통사람’ 이미지를 부각시키려 애를 쓰고 있다.
’보통사람’이란 일하고 세금 내며 성실하게 사는, 매사가 그저 평범한 중산층. 나라의 근간이 되는 이들 중간계층은 그러면 얼마나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미국에서 이들은 너무 홀대 받는 다는 시각이 있다.
전문직의 고소득 계층은 스스로 돈이 많으니 아쉬울 게 없고, 저소득층은 나라가 보살펴 주는 데 반해 중산층은 매주 50 - 60시간씩 일하면서도 허덕이는 것이 보통이다. 집안에서 맏이는 맏이라서 사랑받고 막내는 막내라서 귀염 받는 데 반해 중간은 별로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하버드 대학 사회학과의 티다 스콕폴 교수는 ‘실종된 중간층’이란 표현을 썼다.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국 가정들의 실태를 연구한 그는 정책 논의 과정에서 중산층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가정을 2008년 기준 소득별로 분류하면 하위 1/3에 속하는 저소득층의 가구당 중간소득은 1만9,011달러, 상위 20%에 속하는 전문직·관리직 가구의 중간소득은 14만7,742달러이다. 전체 가구의 53%에 해당되는 중산층 가정의 중간 소득은 6만4,465달러. 주부가 취업하지 않고 가사에 전념하는 경우는 저소득층의 60%, 전문직 20%, 중산층 23%로 나타났다.
대부분 부부 맞벌이로 6-7만 달러 규모의 중간 수준 살림을 유지한다는 말이 된다. 자녀들 데이케어에 맡기면서 부부가 아등바등 일하며 살지만 경제적 여유는 없는 삶이다. 그렇다고 저소득층은 아니니 세금만 꼬박꼬박 낼 뿐 복지정책의 혜택은 별로 없다. 가장 지출 규모가 큰 자녀의 대학 학비만 해도 캘그랜트 등 무상지원은 그림의 떡이다. 융자 받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학비 수만 달러를 고스란히 내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국가적 핫 이슈인 건강보험도 가장 문제가 되는 집단은 중산층이다. 저소득층은 나라에서 보험을 보장해 주니 걱정이 없지만 중산층은 직장에서 제공해주지 않을 경우 보험수가가 너무 높아 무보험자로 불안하게 살기 일쑤다. 전 국민에게 무료 의료혜택과 대학교육이 제공되는 유럽의 나라들과 달리 사회보장제도가 어중간한 미국에서는 중산층만 고달프다.
그런가 하면 근년 교육 예산이 깎여 대학 등록금이 인상되는 중에도 교도소 예산은 증액되고 있다. 공공 도서관에는 책이 없어도 교도소 도서관에는 책이 넘친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정도이다. 치안도 중요하지만 이 정도면 정책의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다.
보통사람들이 행복해야 건강한 사회이다. 성실하고 근면한 중산층 시민들이 자녀 양육하고 노부모 돌보며 사는 데 보탬이 되도록 정책적 배려가 좀 있어야 하겠다. 선거 때나 반짝 관심을 받고 만다면 ‘보통사람’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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