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만한 인연도 없지만 그 소식이 반가운 경우가 있다. 매스미디어와 사이버공간이 우리의 삶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우리는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듣는다. 대부분 일회성 스포트라이트를 끝으로 잊혀 지지만 때로 그 후의 근황이 오랜 지인 같은 친근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애틀랜타에 사는 설웬 가족의 소식을 최근 접하며 그런 반가움을 느꼈다. 사업가인 케빈과 교사인 조앤, 틴에이저 남매인 해나와 조셉의 평범한 4인 가족이 주목을 받은 것은 유튜브에 오른 비디오 때문이었다. 2008년 콜드웰 뱅커가 후원한 ‘우리 집:아메리칸 드림’ 콘테스트에서 조셉이 만든 비디오가 최우수상을 타고 ‘해나의 점심도시락(Hannah’s Lunchbox)’이란 이름으로 유튜브에 올랐었다.
당시 13살의 조셉이 비디오로 소개한 ‘우리 집’은 특별했다. 건평 6,500 평방피트의 3층짜리 저택도 평범한 건 아니지만 정말 특별한 것은 그 집의 ‘용도’였다. 설웬 가족은 시가 180만 달러의 그 집을 팔아 남는 돈 중 절반으로, 절반 크기의 집을 사고 나머지 절반인 80여만 달러로 기아퇴치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었다. 네 명이 살기에는 너무 큰 집을 반으로 뚝 잘라 제3세계 배고픈 사람들의 식량으로 ‘용도변경’ 한다는 기발한 프로젝트였다.
2008년 여름, 설웬 가족은 1년여의 조사와 면담, 방문을 통해 수많은 자선단체 중 ‘기아 프로젝트’를 선택, 아프리카 가나 사람들을 돕기로 결정하고, 부동산 경기침체로 집이 안 팔리자 일단 작은 집으로 이사부터 한 상황이었다.
2주전 LA 타임스 자매지 퍼레이드에서 그 후의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왜 집을 내어 주었는가라는 제목, 케빈 설웬이라는 기고가의 이름을 보고 그 가족 이야기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월스트릿 저널 기자출신인 케빈이 딸과 함께 ‘절반의 힘(The Power of Half)’이란 책을 써서 2월에 출간되는 데, 그 내용을 간추린 것이었다.
그들의 기부금으로 그동안 가나의 동부지역 두 군데에 구호센터가 지어졌다. 회의장, 소액융자 은행, 식품 보관창고, 보건진료소를 갖춘 구호센터 두 곳을 통해 20여개 마을의 주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대단하다.
자선사업의 내용 못지않게 사람들이 궁금해 한 것은 그 가족의 달라진 삶의 내용이었다. 절반으로 줄어든 집에서 사는 게 어떠냐?는 질문을 수시로 받는다고 했다. 너무 비좁아서 불편하지 않을까, 너무 무모한 희생을 자처하고 나선 게 아닐까 그들 자신도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2년을 살고 난 지금, 이사는 그들 생애 최고로 잘한 일이었다고 케빈은 말한다.
넓은 집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좁은 공간으로 들어오니 매순간 서로 마주치며 똘똘 뭉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사는 공간을 절반으로 줄이니 가족 관계는 그만큼 더 긴밀해지고, 가진 것의 절반을 기부하고 나니 더 부자가 된 듯 뿌듯하다고 그들은 말한다.‘절반의 힘’이다.
설웬 가족은 선행 자체로 좋은 역할모델이다. 절반으로 줄여도 될 만큼 큰 집을 가진 사람은 물론 많지 않다. 하지만 둘러보면 누구나 절반으로 줄일 만한 것들은 있다. 매일 TV 보며 보내는 시간의 절반을 자원봉사에 쓸 수도 있고, 옷장 안을 그득 채운 옷들을 절반쯤 덜어내 기부할 수도 있다. 그런 작은 행동이 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아울러 설웬 부부는 부모로서 훌륭한 역할모델이다. 집을 팔아 절반을 내놓자는 것은 어른들의 결정이 아니었다. 빈부격차로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니 “우리 가족이 뭔가 작은 일이라도 하자고 나선 것은 당시 14살의 해나였다.
그런 딸에게 엄마인 조앤은 “그러려면 넌 뭘 희생할 수 있니? 우리 집? 네 방?하고 물었고 해나가 둘 다 좋다고 하면서 일이 시작되었다. 이후로 매주말마다 네 식구가 둘러앉아 자선의 방안들을 연구하는 동안 서로가 서로를 알게 되고 완벽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저 아이가 내 아이 맞나?하며 당혹해하는 부모들이 많다. 자녀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부모와의 관계를 돈돈히 하는 데 공동의 프로젝트만큼 좋은 방안은 없다. 설웬 부부의 ‘절반 기부’를 본받지는 못하더라도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구상하고 같이 행동으로 옮기는 자녀 교육법만은 모두 배웠으면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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