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 스타킹을 신고
레그 워머로 코디한 다음
펌프스 슈즈로 마무리
때론 보석같은 ‘반짝이’
때론 촌티나는 ‘판타롱’
혹은 과감하게 찢어라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부터 올 봄·여름 컬렉션을 유심히 살펴본 패셔니스타들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세계 패션계를 쥐락 펴락하는 거물급 디자이너들의 신경이 온통 몸보다는 다리에 가 쏠려 있다는 것을 간파했을 것이다. 사실 21세기 들어 디자이너들에게 ‘다리’란 그저 슈즈 컬렉션을 갖고 있는 이들이 구색 맞추기 식으로 다가올 시즌 슈즈를 신기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요 몇 년 새 계절불문하고 부티(bootie)와 우주 시대를 연상케 하는 ‘기괴한’ 샌들이 유행하고 다양한 컬러와 패브릭의 레깅즈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모델들의 다리는 디자이너들에게 또 하나의 캔버스가 돼 버렸다.
덕분에 이번 시즌 트렌드 세터들과 패션 피플들은 매년 이맘때면 기웃거리던 값비싼 캐시미어 코트 대신 롱롱 부츠와 스타킹, 부티에 더 ‘필‘꽂혀 옷장 대신 신발장을 채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다가올 봄 역시 머스트 해브 아이템 앞줄엔 옷 보단 레그웨어와 슈즈들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말이다.
지난 가을 밀라노와 파리, 뉴욕에서 타전된 2010 봄·여름 컬렉션을 가만가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디자이너들이 지름신을 대동하고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올 봄엔 무조건 다리야. 다리에 투자하라니까’. 환청이 들릴 만큼 강렬했던 이번 컬렉션의 레그 웨어를 유행 경향별로 알아본다. 혹 이번 겨울 그 멋진 스튜어트 웨이츠먼(Stuart Weitzman)의 따이하이(thigh-high) 부츠와 앨리자베스 앤 제임스(Elizabeth and James)의 옥스포드 부티,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깜찍한 스타킹을 구입하지 못한 것을 억울해 하는 이들에게 안나 윈투어의 말을 전한다. 당신의 지금 옷장뿐 아니라 바로 오늘의 우울함에도 위로가 되길.
‘인생도 잡지도 이미 지난 마감에 연연하지 마라.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겐 또 내일의 마감이 다가오고 있으니. 사력을 다해 인생의 마감을 치르되 정말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면 깨끗이 털고 일어서면 된다.’
■신고, 신고, 또 신고…
이 모델이 다리에 걸치고 신은 건 모두 몇 개나 될까. 일단 이번 시즌 마크의 야심작인 패치 스타킹을 신고, 거기에 레그 워머(leg wammer)로 코디한 다음 신발에 마치 레그워머가 달린 듯한 부티와 펌프스 그 어딘가 쯤으로 이름을 붙일 법한 슈즈를 신어줬다. 언뜻 복잡하기 짝이 없어 보이지만 그 복잡함 속에 나름 질서와 아름다움이 묻어나지 않는가. 이번 겨울 마크의 팬이었다면 이중 한 가지 혹은 몽땅 구입을 시도했을지 모를 당신이라면 다가올 봄 이 아이템들을 따로따로 이용, 빈티지하면서도 사랑스런 패션을 완성해 보자.
패션의 시작은 ‘다리’에서
■60년대 영자씨처럼
이럴 수가. 우리 엄마 빛 바랜 흑백사진 속에서나 보았던 샌들에 양말이 런던 컬렉션에 등장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트렌드 세터들이라면 그리 놀랄 만한 코디도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샌들이나 펌프스에 곱게 양말을 접어 신은 패션들이 속속 등장했으니 말이다. 모델이 신은 레이온 소재 양말에 같은 컬러의 샌들을 짧은 미니 스커트와 매치해 보자. 발랄하면서도 확실한 ‘걸리시 룩’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올 봄엔 블링 블링하게~
반짝인다는 뜻의 이 표현이 요즘 한국에선 10대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듯 하지만 패션계에선 이 반짝이를 빼고 21세기를 논하기 힘들 정도다. 드디어 그 ‘블링블링’패션이 스타킹에까지 강림했다. 단지 금사 은사로 만든 스타킹이 아닌, 진짜 크리스탈을 스타킹에 ‘박아’넣은 것이다. 이처럼 누드 컬러 스타킹에 대문짝 만한 보석을 장식해 놓아 멀리서 보면 언뜻 다리에 보석을 착용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캐주얼 패션보다는 페미닌한 심플 디자인 드레스와 함께 입으면 더 이상의 코디가 필요 없을 것처럼 보인다.
■판타롱 밴드 노출을 허하라
우리가 일명 판타롱이라 부르는 ‘언더 니’(under knee) 스타킹의 지금까지 사용 용도는 무릎길이보다 긴 스커트에 스타킹이 필요할 때였다. 그 판타롱의 밴드가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팬티 스타킹보다 간편하게 신는데 이 ‘아이’의 목적이 있었다면 이번 봄 판타롱 밴드는 날아갈듯 자유롭게 숨도 쉬고 만방에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알릴 전망이다. 미니 스커트나 샤넬 라인 스커트 어디에 신어도 나름 멋진 포스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 된다. 촌스럽다고? 올 봄 패션 키워드는 복고를 넘어선 촌티 패션임을 기억해 두길.
■감각적으로 찢어라
이 역시 이번 겨울부터 예고된 유행 아이템. 그러나 입기 쉬운 아이템은 결단코 아니다. 한번 상상해 보길. 몸에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블랙 레깅즈나 스키니 진에 한두 개도 아닌 이렇게 곳곳에 구멍이 숭숭 나있으니 그 사이사이 그동안 숨 못 쉬고 있던 살들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며 삐져 나올 것을 말이다. 여간 슬림한 다리라인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 왕창 찢어진 레깅즈나 스키니 진은 엄두도 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슬프지만 현실은 현실이니까 인정할 건 깨끗이 인정하자.
■네온 컬러 발목 스타킹
60년대 영자씨 버전에 이은 또 하나의 ‘촌티 패션’이다. 그러나 복고 바람을 넘어 촌티 패션이 은근 슬쩍 스트릿 패션의 선두에 서 패셔니스타를 자극하는 요즘,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오피스 룩으론 좀 자극적일 수 있으나 위켄드 룩, 보이 프렌드 진이나 데님 미니 스커트에 함께 신으면 무심한 듯 하면서도 말 그대로 ‘엣지’ 패션의 진수를 보여 줄 수 있다.
<이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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