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는 소식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곳 가족들은 오히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난방시설이 잘 되어있고 교통수단이 편리하며 겨울옷들이 따뜻해서 추위를 느낄 기회는 별로 없다고 했다.
내 조국에서 국민들이 최소한 그 정도의 안락함은 누릴 만큼 나라가 안정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라고 했는데, 백성의 피와 눈물이 하해를 이루어도 돌아볼 여유도 능력도 없는 나라의 참담한 정경을 지난 열흘 지켜본 때문이다.
아이티가 강진으로 무너진 지 열흘이 되었다. 신문 특파원들의 보도와 TV 화면을 통해 본 그곳의 참상은 형언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사람이 최소한의 존엄성도 허용 받지 못하는 날 것의 상황에 내던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지금 아이티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피해의 심각성을 가늠하는 잣대로 ‘사망자 20만’이 보도되곤 하지만 정확한 사망 숫자는 알 수가 없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사망자는 적게 잡으면 5만 많게 잡으면 20만 이상이 될 수도 있는데, 죽은 자의 숫자를 세고 있기에는 산 자의 상황이 너무도 절박하다고 했다.
아이티 적십자사의 한 간부는 길을 지나면서 거리에 널린 시신을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미 죽은 자들을 보살피는 일보다는 죽어가는 자들을 보살피는 일이 더 급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상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는 상황도 아니다. 심각한 골절상을 당한 채 열흘이 지나도록 치료 한번 받지 못한 중상자들이 수천명에 달한다. 병원은 대부분 물도 전기도 끊긴 상태이고, 소독약이 없어 보드카로 의료기기를 소독하며, 다리 절단을 위해 병원직원들이 톱을 사러 다니는 상황이라니 처절하기 그지없다. 부상자들의 환부는 곪아가고,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은 썩어가니 전염병이 돌까봐 제일 걱정이라고 한다.
세계 각국에서 의료진과 구호품은 밀려들고 있지만 그뿐, 구조대의 헌신의 열정과 난민들의 절박함 사이는 멀고도 아득하다. 모두 몇 명의 의료진과 구조대가 들어와서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이재민들의 손에는 물 한병 빵 한조각 쥐어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필요한 도움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결해줄 기본적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누구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로인한 피해는 별개의 문제이다. 같은 자연재해라고 해도 선진국과 후진국의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남가주에서 가장 생생한 지진 악몽은 1994년의 노스리지 지진이었다. 그날 새벽 4시30분 강진이 LA 일대를 흔들면서 아파트가 무너지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인들은 그 2년 전 4.29 폭동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지진까지 닥치자 엎친 데 덮친 재앙이라며 암담해했다. 그때 놀란 가슴에 아예 타주로 이사 간 사람들이 있고, 지금도 조금만 땅이 흔들리면 공포감에 사로잡힌다는 사람들이 있다.
진도 6.7이었던 당시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57명이었다. 진도 7.0으로 이번 아이티 지진과 같았던 1989년 샌프란시스코 지진 때는 63명이 사망했다. 뜻하지 않은 재해로 희생된 생명은 그 하나하나가 안타깝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 이들 캘리포니아의 지진 피해는 사망자 20만 명을 헤아리는 아이티의 비극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건물과 도로가 지진대비 공법으로 지어지고 비상사태에 대한 대처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진 덕분이다.
세계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말 그대로 지구촌이다. 그만큼 아이티 참사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뜨겁다.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한국에서도 생소한 나라 아이티의 지진 피해자들을 돕는 데 적극 참여하고 있다. 길 가다가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저도 모르게 달려가 아이를 건지게 되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마음이다.
하지만 아이는 왜 물에 빠졌을까. 강에 다리가 없어서 생긴 일이라면 아이만 건져서 될 일은 아니다. 다리를 놓아야 해결이 된다.
아이티 비극의 본질은 지진으로 백일하에 드러난 빈곤의 문제이다. 나라가 나라로서 기본적 골격을 갖췄다면 이렇게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독재와 부패, 억압과 빈곤으로 고통 받던 노예의 후손들이 지진으로 또다시 엄청난 비극을 맞는 것을 보면서 국가 리더십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아이티가 새롭게 일어서기를 기원한다.
권정희 /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