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을 동시에 강타하고 있는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새벽, 전화를 건다. 한밤중에 잠이 깨져 이리 엎치락, 저리 뒤치락, 겨울밤 넘기는 일이 고역이라는 아버지의 초저녁잠을 한뼘 정도 웃목으로 밀어내 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새벽전화, 태평양을 건너오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만나면 튀어 나오는 충청도사투리가 느닷없다. “춥쥬? 아니, 이까이 껄 추위라고 할 수나 있간디,”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쉰을 넘긴 딸이 기억해 내는 추웠던 겨울의 단편들이 눈에 묻어 두었던 고구마처럼, 오지항아리 속의 고욤처럼 달다.
열두 칸 교실이 전부였던 작은 시골학교, 겨울이면 무쇠난로가 놓여지던 그 풍경을 기억해내며 아버지와 나의 그해 겨울 추억들이 시작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그 겨울, 수은주가 영하 3도 이하로 내려가야 교무실 앞에 빨간 깃발이 내걸렸다. 조개탄 난로를 땔 수 있는 날이라는 표시였다. 깃발은 소리없는 마이크였다. 혹은 그보다 더 명확한 소리였다. 선생님이나 당번들이 바께스 하나씩을 들고 교장선생님이 열쇠를 쥐고 있는 창고에서 조개탄을 타왔다. 교실 밑바닥의 네모난 비밀문을 열면 솔방울이나 장작개비가 들어 있었다. 밑불을 붙이는 선생님, 교실은 이내 매운내로 가득 찼다. 교실 유리창 밖으로 입을 벌리고 나와 있는 양철연통, 그 연통으로 노란 연기가 꾸역꾸역 올라가고도 한참이 지나야 교실이 따뜻해졌다. 등교길에 굴비처럼 엮은 장작개비를 책보와 같이 얽어매고 가던 아이들의 풍경, 장작개비는 서로를 기대어 놓아야 불이 붙는다. 어슷어슷 어깨를 기대고서야 타오르는 불꽃처럼 협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아버지의 설명이 길다. 사십 년이 훨씬 넘는 아버지의 교직생활은 사소한 것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을 남겼다.
한겨울에도 불쏘시개거리가 떨어지면 솔방울을 줍기 위해 네귀퉁이를 묶어맨 책보를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빈 깡통에 철사줄 묶어 송충이를 잡으러 올라가기도 했던 학교 뒷산, 솜막대기에 석유를 묻혀 송충이 등에 살짝 갖다 대면 파들락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던 징그런 송충이의 기억이 있는 그 뒷산에는 송충이만큼이나 솔방울도 많았다. 숙제를 안해오는 벌로 늘 난로에서 제일 먼 자리에 앉쳐 놓던 광필이의 책보자루가 제일 먼저 채워진다. 계몽과 표어를 달고 살던 시절, 쥐를 잡자라는 표어를 왼쪽 가슴에 달고 쥐꼬리를 모아오는 숙제를 내도 누런 콧물자국이 마르지 않던 광필이가 단연 일등이었다.
농기구며 놋그릇, 수저, 굴참나무 껍질까지 공출해 가버린 일제강점기, 핍박을 견뎌낸 빈촌의 민둥산엔 시들시들 말라가는 나무들만 남게 되었다. 시들어갈수록 종족보존의 본능에 충실하게 되는 나무들의 비밀, 그래서 부실한 소나무일수록 솔방울이 많이 달려 있다. 그 원리를 이용해 사람들은 참나무의 허리마다 상처를 내 놓았다. 상처를 느끼며 죽을 날이 가까운 걸로 착각을 하는 나무들은 안간힘을 다해 열매를 매단다. 종족보존의 법칙으로 탄생된 도토리들, 나무에게도 몹쓸 짓을 하며 그 구황열매로 허기를 견디던 날을 기억하시는 아버지의 혀가 끌끌거리신다.
조개탄 난로 옆에 앉아 얼굴 벌개지는 아이들과 구석진 뒷자리에 손 곱고 발가락이 어는 아이들, 그 분단간의 불균형, 난롯가에서 시작한 아버지의 불균형 이야기는 다시 지역간의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집에서는 학교 가는 아이 불러세워 소 딸려 보내고 학교에서는 송충이 잡고, 길 넓히는 일에 동원되고, 풀베기에, 모내기에, 도시의 중학교로 시험치러 내보낼 몇아이들을 호롱불 밑에 남겨 놓고 코피 터지며 가르치던 열악했던 날의 회상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득해진다.
칠백년 도읍을 돌아 흐르는 백마강의 기슭에 사는 아버지의 불만은 이윽고 백제와 신라의 도읍, 부여과 경주간의 발전 불균형으로 이어진다. 찬란했던 백제문화, 잃어버린 왕국, 패망의 왕궁에서 꽃잎처럼 떨어져내린 삼천궁녀, 허망한 수식어로밖에 표현되어지지 않는 옛도읍 부여는 내 기억속의 반세기 전보다 오히려 초라하다. 책임지지 못한 왕조에 대한 비하, 폄하된 역사 속에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궁녀의 숫자는 해마다 줄어드는 그곳 인구와의 묘한 아이러니를 일으킨다. 하지만 깨어진 기왓장 하나나 닳아진 돌계단이 그대로 있는 그곳, 서동설화를 쓴 무왕의 작은 연못처럼 변하지 않는 비밀한 풍경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백마가앙-다알-빠암에 물새가 우-우우우울어? 취기에 자전거를 길게 끌고 오시던 아버지의 느린 횡보를 기억하는 조붓한 그 길들이 거기 그대로 있어 나는 행복하다.
한달에 두어번은 취기로 비틀거리던 아버지와, 같이 넘어지면서도 기어코 끌고 오시던 자전거의 기억에 다소 무안해진 아버지의 목소리, 나는 동요 속에서는 세번 울리지만 우리학교에서는 두번 울리던 종소리에 대한 질문으로 방향을 돌려본다.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학생과 선생님간의 무언의 약속, 그속에도 남아있던 일제의 잔재를 없애고자 시작의 의미로 두번, 끝의 의미로 한번씩 끊어 치던 종소리를 설명하시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영낙없이 다시 힘이 오른다. 고요한 삼동네의 초가에 불이 붙거나 비탈밭을 품고 있는 산등성이에 불이 나도 그 종소리가 바빠졌다. 난타되는 종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맨발로 세수대야며 바가지, 물동이를 들고 뛰어나가 불길을 잡으려 애썼지만 물길은 느리고 불길은 빨랐다. 쇠죽솥 하나만 달랑 남겨놓고 폭싹 내려앉던 초가삼간의 어이없음, 타버린 집터 위로 무심한 눈발을 날리면서 그해 겨울은 그렇게 깊어갔다.
쉬는 시간이면 와라락, 도시락을 들고 난로 주위로 몰려들던 친구들, 그 시절에도 난로 위 황금분양권은 주먹들이 차지하기 마련이었다. 맨 밑의 도시락은 타기 마련이고 꼭대기의 도시락은 찬기만 겨우 가셨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 어느 교실에선가 아련한 풍금소리가 들리던 그해 겨울의 오후 수업시간, 난로 위의 양은 주전자에서는 하얀 김이 쉭쉭거리고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창에는 아무개가 아무개를 좋아한다는 스캔들이 대서특필되어 있었다. 그 창 너머로 사정없이 몰아치던 바람소리, 북풍을 안고 돌아가야할 시오리 들판길은 까마득한데 눈꺼풀로 내려앉던 오수의 유혹은 달콤하기만 했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산 밑의 학교, 온몸을 흔들며 아이들을 모으고 흐트러트리던 종소리가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삼동의 먼 들녘으로 명징하게 울려퍼지던 그 종소리는 자식의 미래에 거는 희망의 소리였다. 땡땡, 땡땡- 하루종일 이 교실 저 교실로 끌려다니던 풍금소리와 함께 이제는 그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는 추억의 종소리가 그리워지는 겨울 아침, 가난하던 광필이의 겨울도 그 무쇠난롯가처럼 따뜻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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