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절 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걸어 한 청년이 북한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반도의 북쪽 끝 회령으로 간 것은 예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그 날, 그는 남가주의 가족을 찾는 대신 추위로 고통이 배가한 북한의 동족을 찾아 나섰다.
한인 2세 로버트 박(28)씨가 북한으로 들어간 지 일주일이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 대한 사랑이 특별했다고 한다. 서울에서 노숙자들을 볼 때마다 입은 옷이며 가진 돈을 털어주는 사람으로 인권운동 진영에 잘 알려져 있다. 북한 동포는 그에게 가장 헐벗고 굶주린 이웃이다.
선교사로 멕시코의 노숙자들, 중국의 탈북자들을 도왔던 그는 지난 7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한국에서 북한 인권활동에 전념했다. 그리고는 몇 달 - 북한의 참혹한 인권실태에 대한 한국, 미국 등 국제사회의 침묵이 너무 깊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한 것 같았다. 누군가 세계의 관심을 환기시켜야 한다면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성탄절 날 그는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내어 놓았다. 국경을 개방하고 정치범 수용소를 폐쇄하며 정치범들을 석방하고 김정일이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들고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북한 땅으로 들어갔다. 사자 밥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던 초대 기독교도들의 순교정신을 회복할 때라고 그는 평소 말해왔다고 한다.
그의 입북 소식이 보도되자 아름 아름으로 그 가족을 아는 남가주의 많은 한인들은 남의 일 같지 않은 안타까움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청년이 무사하기를 비는 마음, 아들의 안위가 걱정돼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있을 그 부모에 대한 염려로 사람들은 가슴이 아리다.
그는 무엇을 이루려고 두만강을 건넜을까. 입북 며칠 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소외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자신의 체포뉴스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입을 열게 하려는 의도였다. 불의에 대한 침묵은 범죄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자신을 폭탄처럼 내던져 요란한 굉음이 터져나기를 기대한 것 같았다. 그가 북한 땅에 억류된 지 일주일, 그러나 세상은 잠잠하다. 그의 순수한 신앙열정, 숭고한 희생정신은 높이 사지만,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는 반응들이다. 용기는 대단하지만 행동은 무모했다, 북한정권에 협상카드만 하나 더 안겨준 격이라는 비판이 일반적이다.
젊음은 순수해서 아름답고, 순수해서 종종 무모하다. 40년 전 한국에도 한 순수한, 그래서 무모한 청년이 있었다. 1970년 11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자살한 22살의 전태일이다.
온 나라가 수출에 매달리던 당시, ‘근로환경’은 사회적 관심 사안이 아니었다. 10대의 어린 여공들이 낮고 좁은 공간에서 허리한번 못 펴고 하루 14시간씩 일하며 받는 일당이 50원, 커피한잔 값이었지만 그 비인간적 실태에 대해 정부도, 사회도 함구했다.
청년의 소원은 근로자들이 사람대접 받으며 일하는 것이었다. 근로기준법이 준수되도록 발이 닳게 관청을 찾고 대통령에게까지 편지를 보냈지만 결과는 가혹한 탄압이었다. 불순세력이라는 낙인 때문이었다. 꿈쩍 않는 현실 앞에서 결국 그는 자신을 불살라 항거했다.
이름 없고, 가진 것 없고, 교육도 못 받은 평화시장 재단사의 죽음은 무모해보였다. 하지만 70년대와 80년대를 지나며 평가는 달라졌다. 그의 죽음은 한국노동운동의 뿌리로 확고하다.
로버트 박의 입북이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날 지 어떤 거역할 수없는 흐름의 작은 시작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한 청년의 돌출행동으로 북한이나 미국, 혹은 한국의 기본입장이 흔들리기에 현실은 너무도 냉엄하다.
하지만 간혹 당시에는 무모해 보이던 사건이 지나고 보면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일들이 있다. 전태일 사건이 한 예다. 박씨의 입북 소식을 접한 한 원로목사는 나이 먹은 우리가 할 일을 못하니 저 어린 사람이 짐을 진다며 몹시 가슴 아파했다. 그의 사명감이 기독교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은 그가 무사히 돌아와야 하겠다.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결혼도 하고 미래도 갖고 싶은 것이 개인적 바람이라고 했다. 그가 결혼도 하고 미래도 갖게 되기를 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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