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턴의 한 미용실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 헤어컷 한번에 300달러나 하는 고급 미용실에서 실직자들에게 무료 헤어컷을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중순 뉴욕타임스가 보도하더니 지난주에는 LA 타임스에도 소개되었다.
주인공은 크리스티아노 코라 라는 이탈리아계 남성. 세계적 미용업체인 비달 새순에서 20년 일하다가 몇 년 전 자기 이름의 미용실을 열었다.
세상에는 100% 나쁜 일도, 100% 좋은 일도 없다고 한다. 불경기가 2년이나 지속되는 암울한 시절이 되고 보니 보통 때는 드러나지 않던 착한 마음들이 빛을 발한다. 주위에 어려운 이웃이 별로 없어 남을 도울 일도 없던 사람들이 선행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코라도 그런 케이스가 아닐까 짐작된다.
부유층 여성들이 단골인 ‘크리스티아노 코라’에도 불경기 한파는 확연했다. 매달 찾아오던 단골들이 8주에 한번, 10주에 한번으로 방문이 점점 뜸해지지는 것이 그에게는 어떤 지표보다 정확한 경제동향이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 많은 게 분명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내가 잘 하는 게 뭘까?”를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매주 하루를 ‘실직자를 위한 무료 헤어컷’의 날로 정한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헤어컷을 한 여성들은 산뜻해진 머리모양에 눈물을 흘리며 좋아했다. 그들이 삶의 용기를 되찾도록, 구직 인터뷰 때 좀 더 자신감을 갖도록 돕자는 것이 코라의 의도이다.
그런 착한 마음이 찾아든 것이 그만은 아닌 모양이다. ‘코라’의 무료행사가 블로그를 따라 퍼지자 “비슷한 일이 또 있다”는 댓글이 붙었다. 실직자들에게 무료로 옷을 세탁해주는 세탁소가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차림새라도 반듯했으면 하는 배려일 것이다.
미용실이건 세탁소건 모두가 고전 중이다. 한 푼이라도 수익을 더 올려야 하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그 척박한 상황의 밭에서 오히려 ‘무료봉사’라는 마음의 꽃이 피어나는 것은 무슨 일일까.
우리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은 기쁨 때문이다. 내어주고 나면 움켜쥐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기쁨이 찾아든다는 것을 경험자들은 안다.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에 나오는 구절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의 체험이다. 그것은 이제 과학적으로도 확인이 되었다.
지난 2006년 미국 국립건강연구소(NIH)의 신경과학자들은 두 가지 시나리오를 놓고 뇌의 작용을 실험했다. 연구진은 실험대상자들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시나리오와 자기 자신이 갖는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구체화하도록 주문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기부하는 생각을 하자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섹스를 할 때와 똑같은 뇌의 부위가 활성화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기본욕구인 식욕과 성욕에 버금가게 인간에게는 선행의 욕구가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아울러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선행의 근원은 감정이입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 오히려 착한 마음들이 꽃피는 이유이다. 내 배가 고파보니 남의 배고픔이 더 절절하게 이해되는 것이다.
지난 추수감사절 때 웨스트버지니아의 백인 친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사진을 곁들인 ‘비둘기와 토끼’ 이야기였다. 아마도 그 동네에서 일어난 일인 것 같았다.
어느 집에 토끼새끼 5마리가 태어났는데 개가 해쳐서 두 마리는 죽고 나머지도 신통치가 않았다. 그 집에는 또 다리 하나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비둘기가 함께 살고 있었다. 노아라는 이 비둘기는 왠지 토끼장 주변을 떠나지 않으며 새끼들을 들여다보고 잠도 그 앞에서 잤다.
새끼들이 6일째 되던 날 집주인이 보니 토끼장 안에 새끼가 두 마리 밖에 없었다. 다른 한 마리를 찾느라 토끼장 앞의 노아를 들어 올린 주인은 깜짝 놀랐다. 새끼가 노아의 날개 밑에서 잠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이후 노아는 항상 토끼새끼들을 날개 밑에 품어주고, 빌빌하던 토끼들은 비둘기의 품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있다고 했다.
다리 저는 비둘기처럼 불완전한 우리가 서로에게 품을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성탄절을 맞으며 생각해봐야 하겠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남에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각자 그릇에 맞는 사랑의 숙제가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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