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다음날인 지난 27일 오전 이메일로 긴급뉴스가 들어왔다.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BBC 등 미디어들이 보내주는 메일이다. 타이거 우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이었다.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우즈가 어쩌다 사고를 당했을까, 얼마나 다쳤을까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사무실로 돌아오니 속보가 들어와 있었다. 다행히 ‘가벼운 부상’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33세의 골프 황제에게 닥친 것은 ‘가벼운 부상’이 아니라 난생처음 맞는 심각한 ‘중상’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골프장에서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황제’, 집에서는 모델 출신 북구 미인을 아내로 둔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로 이미지 완벽했던 그가 부적절한 여자관계를 시인했다. 2일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가족들을 실망시켜 미안하다. 일탈을 진심으로 후회한다. 가정 안에서 문제를 해결 중이니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고 했다.
나이키 광고 중에 세계 여러 나라 어린이들이 너도나도 나는 타이거 우즈!를 외치는 광고가 있었다. ‘우즈’는 꿈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앞으로는 누군가 나는 우즈!라고 하면 ‘바람피웠다’는 고백이 되게 생겼다.
우즈의 ‘일탈’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 탄탄대로를 달리던 사람들이 왜 곁길로 빠져 논두렁에 처박히곤 할까.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아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뭔가를 불쑥불쑥 들이미는 우리의 마음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만족감은 종종 별개의 문제이다.
실제로 우즈는 평소 밝지가 않았다고 한다. 1996년 프로로 데뷔했을 때, 만면에 웃음 가득하고, 멋진 샷을 날릴 때마다 주변의 팬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즐거워하던 생기발랄한 우즈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지난해 무릎수술 후 복귀하고부터는 특히 뚱하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뭔가 마음에 안 들면 마구 분노를 터트리곤 했다고 스포츠 기자들은 전했다.
서른 갓 넘어 인생의 황금기를 누리는 행운아, 원한다면 그냥 누워만 있어도 매주 200만 달러가 들어오는 억만장자, 지구상에는 아직 대적할 선수가 없는 세기의 골퍼가 왜 그렇게 지겹고 짜증나는 표정인지 사람들은 의아해하곤 했다고 옵서버의 한 스포츠기자는 썼다.
사람이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해하는 마음은 뇌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베스트셀러 ‘만족’의 저자인 고레고리 번스 에모리 대학 교수는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될 때 우리는 만족감과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하는 동안 혹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동안, 행복에 겨워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른다면 그건 뇌에서 도파민이 펑펑 생성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그 ‘어떤 일’, 그 ‘누군가’도 반복되면 처음의 흥분과 행복감이 줄어드는 것이 우리 변덕스런 마음의 조화이다. 도파민 분비량이 감소하는 것이다.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는 것은 ‘새로움’이라고 번스 교수는 설명한다. 새 애인, 새 옷, 새 차, 새 직장 … 모든 새 것이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새로움의 자극으로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성공한 사람들은 인생에서 기대와 도전의 기회를 너무 일찍 차단당한다는 점에서 불쌍하다. 동년배들이 목표점에 도달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는 동안, 일찌감치 고지에 오른 그들은 지루함이라는 적과 싸워야 한다.
골프 신동, 우즈는 2살 때부터 스타였다. TV 쇼에 나와 밥 호프를 상대로 퍼팅을 했었다. 이어 소년기에는 캘리포니아 주니어 골프, 10대 때는 미국 아마추어 골프를 휩쓸고, 20살 프로 데뷔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골퍼로 군림하고 있다.
’황제’를 한번 누른 후 양용은은 하늘을 날듯 기뻐했지만 우즈 본인은 그런 싱싱한 감동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남들은 평생 꿈도 못 꿀 메이저대회 우승도 그에게는 기쁘지만 새로울 것은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인생이 지루할 만도 하다. 일탈의 충동은 대개 지루함에서 나온다.
90년대 한국에서 ‘그녀를 만나기 100미터 전’이라는 노래가 유행했었다. 좋아하는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 설레고 떨리는 흥분을 담은 노래였다. 도파민은 직접 ‘그녀’를 만나기 전, 기대감으로 부풀 때부터 분비된다고 한다. ‘100미터 전’부터 행복해본 경험이 누구나 있지 않은가.
너무 모든 걸 다 갖는 것이 꼭 축복은 아니다. 덜 가져서 도전할 게 많은 것도 축복이다.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도전,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하게 오래 사는 비결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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