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플루가 유행하면서 한국에서는 안과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환자가 줄어서 안과의사들이 ‘개점휴업’ 상태라는 것이다.
원인은 철저해진 위생관념이다. 최근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매년 여름과 가을에 기승을 부리는 아폴로눈병 감염자가 올해는 1/4이나 줄었다. 신종플루 예방책으로 손 씻기가 강조되고 국민들이 열심히 손을 씻자 눈병이 예방된 결과이다.
청결이라는 좋은 습관이 뿌리 내린 것은 백번 환영할 일이지만, 그로 인해 엉뚱한 피해가 생겼으니 그것을 ‘청결의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
연말 샤핑 시즌이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연말 샤핑 시즌은 단순한 대목이 아니다. 이 기간의 매출이 연매출의 4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한달 벌어서 한해를 버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자의 빨간 글씨를 흑자의 검정 글씨로 바꾼다는 의미에서 시즌 첫날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이름 붙였다.
연말 대목이 중요한 것은 또 미국 경제에서 소매업이 차지하는 비중 때문이다.
수출이 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 경제는 소비자들의 씀씀이에 크게 의존한다. 소비가 국내총생산의 70%를 차지한다. 연말 대목의 성적이 좋으면 경제가 치고 올라갈 계기를 마련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이번 연말 소비자들은 얼마나 돈을 쓸까. 소매업계는 지갑을 꽉 움켜쥔 소비자들의 악력을 풀어내려고 여간 조바심이 아니다. 11월 들어서기도 전부터 백화점들이 크리스마스 세일을 시작하고, 대대적 할인판매가 거의 매주 행사가 되었다. 어떤 품목, 어떤 세일에 소비자들이 반응을 보이는지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차갑게 얼어붙은 소비심리가 쉽게 풀어질 기세는 아니다. 연말 매상에 가장 관심이 높은 전국 소매업연맹(NRF)은 올 연말 매상이 지난해보다도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NRF 조사에서 샤핑 경비를 지난해보다 줄일 것이라는 소비자가 84.2%에 달한 탓이다.
원인은 투철해진 검약 정신이다. 불경기 속에서 2년을 사는 동안 절약이라는 미덕이 자리를 잡았다. 돈 없는 사람은 물론 돈 있는 사람도 가능한 한 안 사고 안 쓰는 게 몸에 배었다. 실업률이 두 자리 숫자에 달하는 불안한 상황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한 푼이라도 저축하자는 정서이다.
절약이라는 좋은 가치가 뿌리 내린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그로 인해 소비경제가 살아나지 못하고 불경기가 장기화하는 ‘절약의 역설’이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미국의 문제는 어플루엔자였다. 풍요(affluence)와 인플루엔자가 합쳐진 이 말은 병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사회현상, 그 탐욕과 과소비의 문화를 의미한다. 불경기가 벼락 치듯 들이닥치자 이제는 그와 정반대인 신종의 ‘플루’가 찾아들었다. 한푼이라도 움켜쥐고 보는 구두쇠 작전이다. 카드 긁어서 펑펑 쓰며 즐기던 ‘베짱이’들이 돌연 ‘개미’로 바뀌었다.
개미의 미덕은 근면과 검약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알뜰살뜰 저축해서 내일을 준비한다. 저 한 몸의 안위를 위해서는 더 할 나위없는 생활태도이다. 하지만 남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이솝은 말한다.
’개미와 베짱이’를 쓴 이솝은 개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개미가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때문이고, 그렇게 모은 것을 꽁꽁 쟁여두는 것은 누구와도 나누지 않으려는 인색함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솝은 꿀벌을 대안으로 내놓는다.
이솝의 다른 우화 ‘개미와 꿀벌’에서 개미와 꿀벌은 서로 더 현명하고 부지런하다고 논쟁을 벌이다가 아폴로 신에게 판정을 부탁한다. 아폴로의 입을 빌려 이솝은 개미에게 말한다.
다른 어떤 생물도 네가 비축한 부의 일부를 공유하지 못한다. 반면 꿀벌은 기특하고 정교한 노력으로 세상에 축복이 되는 것을 만들어낸다
절약이 아무리 경기회복에 방해가 된다한들 없는 돈을 쓸 수는 없다. 좀 여유 있는 사람들이 연말에는 주머니를 열어야 하겠다. 열심히 모은 꿀을 유쾌하게 나눠주는 꿀벌처럼 이웃들에게 좀 넉넉히 선물을 전하다보면 연말 경기도 살고 미국 경제도 살지 않을까 싶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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