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앞둔 이맘때면 미디어들이 단골로 다루는 내용들이 있다. 추수감사절 날 가족친지들이 둘러앉아 먹을 맛있고 색다른 음식 만드는 법, 그리고 푸짐한 명절음식 즐기면서 살 안찌는 법 등이다. 먹고 싶은 욕심과 빼고 싶은 조바심 사이에서 마음 편할 날 없는 계절이 찾아왔다.
1621년 초가을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서 가진 첫 추수감사 모임은 사실 먹는 잔치가 아니었다. 1620년 12월 엄동설한에 플리머스에 도착한 그들에게 미국은 풍요의 땅과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에서의 첫해 그들은 거처할 오두막 보다 7배나 많은 무덤을 만들며 혹독한 시련을 견뎌야 했다.
메이플라워에 함께 올랐던 어린이와 어른 102명 중 절반이 죽고 달랑 53명이 맞은 첫 추수에 그들은 감격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미국 역사상 아마도 가장 가진 것 없었을 그들이 감사의 전통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감사의 참의미가 담겨 있다.
추수감사절에 먹고 즐기는 잔치의 전통을 더해준 것은 인디언들이었다. 3일간 계속된 청교도들의 추수 축제에 인근의 왐파노악 인디언들은 수십명이 동참하며 자신들의 추수 전통을 가져왔다. 인디언들의 고대 축제인 ‘니콤모’ 전통이었다. 직역하면 ‘내어주기’ 혹은 ‘교환하기’.
인디언들은 그 전통대로 헐벗고 굶주린 백인 외지인들에게 먹고 마실 것을 나눠주며 추수의 기쁨을 함께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근 400년 전 청교도들 같은 심정으로 추수감사절을 맞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불경기를 통과하면서 지난 한해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잃었다. 생계를 보장해주던 직장, 평생 알뜰살뜰 모았던 돈, 추억 어린 집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 여파로 가정이 깨어진 케이스들도 상당하고 목숨을 끊은 이들도 있다.
누구나 조금만 관심 갖고 돌아보면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상황에 내몰린 친지들이 주변에 여럿 있다. 친절을 베풀라. 만나는 모든 이가 힘겨운 싸움을 싸우고 있으니라는 플라톤의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는 적도 없다. 감사와 추수의 의미를 되새겨보지 않을 수가 없다.
감사는 잃은 것, 못 가진 것에 눈감고 가진 것을 보는 자세이다. 이미 잃어버린 것에 연연해서는 미래가 없다. 초라해서 더욱 값졌던 수확, 무엇보다 단지 살아있음에 감격하던 청교도들의 감사가 좋은 표본이다. 가족, 건강, 생명 … 가진 복을 세어보는 아름다운 전통이다.
척박한 현실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이 감사라면 다른 사람이 힘겨운 상황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것은 나의 나눔이다. 인디언들의 ‘니콤모’ 전통이자, 내가 거둬야 할 다른 의미의 추수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수확은 사람들의 마음이다. 자신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는 사람 하나 없다면 황폐한 인생이다. 감사라는 마음의 열매는 배려와 나눔으로 얻어지는 데 그 출발은 관심이다. 영감어린 글들을 소개하는 조앤 존스라는 저자의 경험담이다.
간호대학 2학년 때 교수님이 시험문제를 냈다. 문제들을 죽 훑어가던 나는 마지막 문제에서 멈췄다. 학교 청소를 하는 여자 청소부의 이름을 묻는 문제였다. 이 무슨 농담인가. 그 청소부를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무슨 수로 이름을 안단 말인가? 나는 마지막 문제를 빈칸으로 남긴 채 시험지를 제출했다. 수업이 끝나기 전 한 학생이 그 문제도 점수에 들어가는 지를 물었다. ‘물론’이라고 교수님은 말했다.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이다. 너희들은 그저 웃으며 헬로 하고 말겠지만 모두 너희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 교훈을 평생 잊지 않았다
경제는 회복 중이라지만 우리의 주머니 사정은 여전히 팍팍하다. 실직한 사람들에게 활짝 취업의 문이 열릴 때는 언제일지 아직도 앞이 안 보인다. 물질적으로 어려울 때는 마음의 힘으로 사는 것이 지혜이다. 따뜻한 미소, 푸근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우울한 인생에 한줄기 햇살이 될 수 있다. 열을 도울 수 없다고 도울 수 있는 하나를 포기하지는 말자.
물질적으로는 별로 거둘 게 없는 추수철이다. 대신 사람들의 마음 밭에서 추수하는 감사의 열매가 풍성했으면 좋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