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르른 하늘. 선선한 잔바람이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 선 은행나무의 샛노란 잎들을 건드려 흩날리게 한다. 이미 인도를 노랗게 물들인 낙엽들은 잔바람에 밀려 자르르 결을 만들면서 인도 가장자리로 굴러가 쌓인다.
지난 20년 동안 가을을 맞을 때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한국 거리 속의 주인공이 되기를 염원했었는데, 드디어 그 주인공이 되어 풋풋한 한국 가을 냄새를 흠뻑 마시고 있는 중이다.
전라북도 태권도 협회가 2009년 해외 태권도 지도자 방한 행사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16개국에서 온 85명 태권도 사범 중 하나로 참석했다. 현재 전라북도 무주에 태권도 공원이 건립되고 있는데 전 세계에 이를 알림과 동시에 외자유치 및 새만금 관광 사업을 홍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행사다.
1998년 대한 체육회의 ‘태권도 성전’ 건립건의로 시작된 이 사업은 지난 9월4일 마침내 기공식을 하기에 이르렀다. 5억 달러 예산으로 189개국의 7,000만 전 세계 태권도인들을 위해, 태권도 정신과 철학을 함께 나누며 세계무술 교육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할 태권도 성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주 30~40년 전 해외로 파견된 한국인 관장들 그리고 그들의 초기 학생으로 이젠 스스로 관장이 된 대개 5단 이상의 태권도인들이 초청 받아 전라북도 전주, 무주에서 국회의원, 도지사, 시장, 태권도 협회의 환영을 받으며 태권도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더하고 있는 중이다. 외국인들 중에는 대회 등으로 한국을 몇 번 방문한 사람도 있고 첫 방문인 사람도 있다. 모두 주위 한국인들의 친절과 전통 한국문화, 예술을 만끽하고 있다.
항시 한국인으로서만 방문했던 내겐 태권도인으로서의 방문인 것도 새롭지만, 외국인들과 하나가 되어 한국문화를 남의 것인 양 소개 받고 또 그들의 솔직한 반응까지도 볼 수 있어서 더욱 인상 깊고 흥미롭다.
내 주위 미국친구들은 한국음식을 말할 때마다 비빔밥을 얘기하며 군침을 흘린다. 세계 태권도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전주에서 비빔밥을 먹으며 이곳이 바로 그 비빔밥의 고향이라고 하니 감격해 한다.
대개 15년 이상 태권도를 한 사람들이라 웬만한 한국음식은 다 먹어본 사람들이다. 불고기, 갈비, 잡채는 물론 김치찌개도 직접 해먹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전주식 코스 한정식을 먹으며 흰 홍어회, 홍어찌게, 게장, 청국장, 번데기를 앞에 놓고는 그 모양새와 냄새에 난감해 한다. 서해안에서는 조갯국, 조개젓, 새우젓을 조금 찍어 맛보고 나선 계속 밥과 김치만 먹는다.
막걸리 집에서 접한 예상을 초월한 산 낙지는 모두의 호기심을 최대한으로 만족시켰다. 모두 놀라 웃으며 접시 위에서 꼬물락 거리는 모양을 한참 노려보더니 한 점씩 입에 넣고 씹는다. 아! 그리곤, 맛 있단다. 또 집어 먹는다. 나 혼자 끝까지 먹지 않자, 한국인이 창피하게 산 낙지를 못 먹는다며 놀린다.
그들은, 억지로 다 먹어야 했다면 ‘고문’이었을 음식들을 조금씩만 맛보며 한국을 배울 수 있음에 많이 감사해 하면서 태권도 때문에 얻은 이 부수적 경험들을 만끽한다. 진행과정 중 외국인으로서 어려웠던 점이 있어도, 좋은 경험이 더 많고 또 고마운 마음이 훨씬 더 커서, 행사 관계자들에게는 좋다고만 말한다. 하지만, 식사, 통역 등 적당히 넘어갈 수 있는 작은 어려움들을 내게는 솔직하게 털어 놓는다.
많은 외국인 상대 운영단체들이 한국인이 이해하는 한도 내에서 외국인의 편리를 도모한다. 외국인들은 대개 작은 일이고 또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좋지 않았던 경험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래서 쉽게 고쳐질 일들이 되풀이 되면서 끊임없이 그리고 쓸데없이 외국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린 며칠 있으면 고국에 돌아가 동료나 제자들에게 태권도공원을 소개하고, 앞으로 매년 수없이 열릴 행사에 그들을 데리고 올 것이다. 외국인 입장에서 한국문화를 체험한 이번 경험은 좀 특별한 것인 것 같다. 외국인 상대로 운영하게 될 태권도공원 설립과 운영에 좋은 자료가 될 듯싶다. 그래서 그들의 반응을 열심히 살피는 중이다.
김보경 / 대학 강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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