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커타 시 로우어 서큘러 가 54A’ - ‘어머니 집(Mother House)’의 주소다.
캘커타 시민들이 그냥 ‘어머니(Mother)’라고 부르는 이 분은 마더 테레사이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살았던 집이자 12년 전 선종 후 그곳 마당에 모셔졌으니 시민들에게 그 집은 여전히 ‘어머니’가 계신 곳이다.
최근 ‘어머니 집’에서 ‘어머니’를 빼앗으려는 시도가 있어서 캘커타 시민들이 몹시 화가 났다. 알바니아 정부가 내년 8월 테레사 수녀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유해를 돌려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가 알바니아 사람이니 유해 송환이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인도 정부는 즉각 거부의사를 밝혔다. 인도의 해석으로 마더 테레사는 인도 국민이라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캘커타 하층민들의 어머니로 70여 년을 헌신하는 동안 그 어떤 자그마한 연관성도 갖지 않았던 나라가 왜 갑자기 유해를 돌려달라는 것이냐며 국민들은 분개하고 있다.
캘커타 시민들의 반발은 특히 거세다. ‘어머니’에 얽힌 숱한 개인적 사연들을 가진 그들은 ‘어머니’ 없는 캘커타는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시민들은 지금도 위로 받고 싶고 간구할 것이 있으면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 ‘어머니 집’을 찾는다니 왜 안 그렇겠는가.
사람은 태어날 때의 모습은 비슷하지만 세상을 떠날 때의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똑같이 몸을 받아 살고 떠난 흔적이 사람마다 다르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 먼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고, 악명으로 길이 남는 경우가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존재가 빛나는 경우가 있다.
테레사 수녀의 유해를 놓고 두 나라가 신경전을 벌이는 것은 그가 남긴 사랑의 흔적이 그 만큼 깊고 넓기 때문일 것이다. ‘흔적’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진 감동의 경험들로 만들어진다. 예를 들면 사브리나 다비드라는 여성의 경험이다.
캘커타에 사는 39세의 이 여성은 수년전 어느 겨울날 ‘어머니 집’의 문을 두드렸다. 두 살짜리 아들이 추위에 떠는 데 입힐 옷이 없기 때문이었다. 사브리나를 본 테레사 수녀는 두말없이 자신이 덮고 있던 담요를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더라고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캘커타 시민들은 수없이 많다. 가진 대로 나눠주는 말간 사랑, 그 가벼움이 감동을 만들어 낸다.
곤충 중에 물위를 걷는 것이 있다. 소금쟁이다.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걷는 비결은 몸이 가볍기 때문이다. 아울러 몸 전체에 짧은 방수 털이 무수히 나 있어서 물에 젖지 않는다고 한다. 덕분에 소금쟁이는 물의 막을 깨트리지 않고 표면장력을 그대로 이용해 물위를 걸을 수 있다고 곤충학자는 설명한다.
우리가 존재의 물위를 걸을 수 없는 것은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바윗덩어리같이 무겁고 큰 욕심 때문에 고해라는 물속에서 아등바등 사는 것이 우리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덜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며칠 전 크리스천사이언스 모니터에 농부들이 버리는 농산물을 모아 가난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여성의 이야기가 실렸다. 버몬트 주에 사는 20대의 이 여성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과수원이나 농장들을 찾아다닌다. 농부들이 일손이 부족해 수확하지 못하고 버려놓은 채소, 흠이 생겨서 팔 수없는 과일들을 모으는 것이다. 농부들은 애써 농사지은 것을 썩혀 버리지 않아서 좋고 가난한 사람들은 싱싱한 과일과 야채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가을 추수 후 농작물을 적당히 남겨두는 것은 사실 동서고금의 인심이다. 추수하는 농부들이 이삭을 싹싹 긁어모으지 않고 남겨두어 가난한 이웃들이 주워 가게 하는 풍습은 구약시대에도 있었고, 우리 민족에게도 있었다. 밀레의 그림 ‘이삭줍기’도 이 풍경을 담은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마감하며 남기는 흔적은 추수하고 난 가을 들판 같지 않을까. 이삭 한 톨도 남김없이 긁어모아 혼자만 배불리는 사람은 세상을 떠나는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진다.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반면 테레사 수녀는 평생 농사지어 모두 남에게 남기고 떠난 케이스이다. 가을 들판에 넉넉하게 이삭을 남기는 연습을 해야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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