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단풍의 색채도 짙어지고 마음을 파고드는 신비한 가을의 정서도 깊어가고 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사색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의 귀한 결실을 거두기 위해 우리는 여름 동안 모든 것을 희생하고 피땀 흘려 노력한다. 수확하는 결실이 크고 귀할수록 그 고생과 희생도 비례적으로 커야 할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주어진 창조주의 공통적인 법칙일 것이다. 결실을 맺고 존속하기 위해 생명체 모두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인식하며 살고 있다.
창조주는 생명 그 자체를 바치게 하는 절대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한 알의 씨가 땅에 떨어져 썩지만 그 희생의 결실로 하나의 새로운 생명체로 이어지게 한다. 아마도 창조주가 요구하는 이 절대적인 희생으로 인하여 생명존속의 궤도와 생태계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만사가 얼어붙어 생명은 끝난 것 같지만 생명은 봄을 맞아 또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끝이 아니라 또다시 봄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윤회의 법칙일 것이리라.
한국에서는 알이 찬 암게들을 잡아 게장을 만들어 먹지만, 미국에서는 배란기에 암게들을 잡아먹지 않는다. 암게가 알을 배면 얼마 후 암게의 몸 안에서 알들이 부화되어 수많은 새끼 게들이 태어나서 어미 게의 살을 먹고 자라난다. 어미 게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희생하여 새끼들의 먹이로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새끼 게들은 커서 모두 어미 게의 몸에서 빠져 나가버리고 어미 게는 빈 몸으로 껍데기만 남게 된다. 한 마리의 게가 수많은 새끼 게들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자신의 살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어미 게의 숭고한 희생의 결실이다. 이 절대적인 희생의 결실로 인하여 게들의 생명은 존속되고 있다.
태국에는 특종의 부채야자나무가 사는데 보통 60여년 사는 나무로 일생에 단 한번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그 꽃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우며 꽃이 지고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그 야자나무는 시들어 죽는다고 한다. 그 야자나무는 한평생 살다가 몇 알의 씨앗을 남기기 위해 한번 극치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과 한 알의 씨앗을 바꾸는 위대한 희생인 것이다.
우리는 호주 대륙에 사는 가시나무새의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일생에 단 한번 우는 새로 그 울음 소리는 이 세상의 어느 소리보다도 아름다운 소리로 전해지고 있다.
호주의 작가 콜린 맥컬로의 소설 “가시나무새(Thorn Birds)”에 나오는 전설의 새이다. 태어나서 어미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가시나무를 찾아 헤매며 살다가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를 찾으면 그 가시에 몸을 던져 찔리고 그 아픔과 고통을 견뎌내면서 이 세상 어느 새도 따를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죽어간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며 세상은 고요함 속에서 그 아름다운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전설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노래는 가시나무에 찔려 고통 받는 그 희생을 바치고서야 얻을 수 있다는 생명존속의 귀한 진실을 일러주고 있다. 비록 전설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생명을 내어주는 큰 고통과 희생이 없이는 귀하고 아름다운 삶의 결실을 걷을 수 없다는 근본적인 생명 존재의 엄연한 조건을 암시해 주고 있음이다.
지구상의 생태계 속에는 이와 흡사한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연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넓은 바다나 혹은 강으로 내려와 살던 연어들이 배란기가 되면 알을 낳기 위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만신창이 되며 태어났던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 알을 낳고 죽는다. 그의 생명을 빼앗아간 희생이지만 그로 인하여 수많은 연어들이 생명을 얻게 된다.
가을에는 창조주의 예술이 그 아름다움으로 극치를 이루며 모든 곡식이 무르익어 고개를 숙인다. 나의 인생도 철들어 성숙해지고, 그리고 나의 인격도 무르익어 고개를 숙이는 계절이 되기를 기대해보는 마음 간절하다. 절대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창조주의 보답은 가을의 아름다운 창조의 극치 속에 담겨져 있을 것임을 확신한다.
박영환
포토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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