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민족사에 폭풍의 언덕과 같은 ‘광란”의 시대를 남긴 독재자 박정희가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당시 확산되던 부마사태를 “피를 흘려서라도 진압하라”고 지시했을 때 그의 무한 폭력통치에 전율을 느낀 심복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그를 처단한 궁정동 사건이 벌써 30주년을 맞았다. 이를 계기로 요즘 극히 왜소(矮小)했던 그를 실물(實物)이상으로 우상(偶像)화 하는 허위 주장이 일부 언론 매체를 장식하고 있어 경각심을 울린다.
우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박정희, 그는 누구인가? 그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 그 것은 1961년 5월 16일 이른 새벽 미명, 일단의 군 장교들이 공수부대원들을 이끌고 한강을 도강(渡江)하여 무력으로 국가의 헌정(憲政)을 유린하고 국권(國權)을 찬탈한 정변(政變)이었다.
이로 인해 불법적 삼선개헌으로 영구집권을 노린 자유당의 이승만 독재를 축출한 4.19 혁명으로 이제 막 꽃 피기 시작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위업이 그 실현 직전, 마치 일제의 모진 비바람에 스러진 한 송이 봉선화처럼 군화 발 아래 무참히 짓밟혔다.
이 5.16 쿠데타로 우리 조국의 민중들은 거의 30년이 넘도록 폭력이 지배하는 야만에 할퀸 비극적 역사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숨을 죽이며 거쳐야 했다. 이 비극적 역사에 책임이 있는 정변의 수괴를 “그가 소박했다”고 미화시키는 주장의 배후에 숨은 정체는 분명히 민중들의 피와 땀을 착취한 ‘개발경제’의 수혜자들인 일부 재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 극한대결, 야간 국회, 고문과 살인, 지역차별, 통행금지, 미행, 납치, 불법 체포, 인신구속, 휴교령이 그의 통치 수단이었다. 가공할 일은 군대, 중앙정보부, 경찰, 중앙 및 지방 행정기관 등 한 나라의 모든 권력이 그가 자행한 불법, 부정, 불의의 강제집행 기관이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그의 치하에서 대한민국은 나라라는 국격(國格)을 상실했다. 이런 사실은 “그가 막걸리를 좋아했다”는 서민적 미화로 상쇄될 수 없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이며, 그의 ‘공적’을 찬양하는 개인이나, 단체나 특히 언론은 이 불의의 공범이다.
일제의 군관으로서 독립운동을 하던 동포들을 학살하던 박정희 소위가 대한민국의 육군 소장이 될 수 있었던 사실 자체가 해방 이후 일제에 봉사하던 민족 반역자들을 대거 수용한 국방군 조직의 무원칙과 부정부패의 소치이며, 더욱 아이러니컬한 것은 그 자신이 일소(一掃)를 쿠데타 공약으로 내세운 부정부패의 수혜자였다는 점이다.
장장 18년에 걸친 박정희의 철권정치는 궁정동 안가(安家)의 총성과 더불어 종언을 고했지만, 그가 남긴 군사파쇼 체제는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 정권으로 계승되었고, 그 후 집권한 민주세력의 개혁과 민족화해 노력을 가로 막았다. 그의 제도적, 물리적, 그리고 인적 유산(遺産)은 오늘 조국이 겪고 있는 혼란 속에 투영되고 있다. 도대체 3공의 공화당이 한나라당으로 개명하여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불가사의 한 일이다.
이들은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발전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히틀러는 유럽에서 가장 후진 농업국이었던 독일을 세계적 산업국가로 발전시킨 공헌을 했다. 그러나 히틀러가 독일 경제발전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없다. 인륜과 도덕을 짓밟고 불법과 불의, 그리고 부정에 기반한 통치는 히틀러나 아프리카의 이디 아민, 남미의 아우구스트 피노쳇트의 경우처럼 3공의 그 것 역시 역사 발전에의 기여 여부의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일제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일본 우익의 주장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판 받아야 한다.
한국의 일반 대중은 한국이 세계 10위라고 자랑하는 정부의 선전을 믿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국부의 75퍼센트 쥐고 있는 몇몇 재벌들의 몫을 뺀 나머지 25퍼센트만의 민중들의 몫을 기준으로 산정하면 그들의 수준이 세계 후진국의 그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사실 개발독재의 경제정의 외면의 희생자였다. 바로 이 때문에 어제 발표된 영국 ‘레가툼 번영지수’는 한국을 26위에 마크했다.
우리 민중들은 주변에서 일고 있는 사이비 주장에 현혹됨이 없이 동학혁명 이후 그 동안 장기간의 투쟁에서 성취한 민주주의의 원칙과 민족통일에의 접근, 그리고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통해 새 역사의 지평을 넓혀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USNews@gmail.com
이선명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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