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 단지나 부동산 정보업체 사이트에서는 “×억원 이하로는 절대 팔지 마세요” “우리 아파트 저평가 돼 있습니다. 우리 재산은 우리가 지켜야합니다” “싼 값에 매물을 내 놓은 ××부동산과는 절대 거래하지 마세요” 같은 문구들이 흔히 눈에 띈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써 붙이거나 올린 글들이다.
단지 내에 거주하는 주부들로 구성된 부녀회는 아파트 시세 지킴이들이다. 이들의 파워는 막강하다. 시가보다 너무 싸게 매물을 거래한 부동산 업소들은 부녀회원들의 조직적인 외면에 파리를 날리다 문 닫기 일쑤다.
아파트 가격이 들썩일 때마다 부녀회의 담합 행위를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실질적인 규제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담합 혐의를 적용하려면 대상이 사업자 단체여야 하고 일정 수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파트 부녀회는 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법률적용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부녀회이지만 이들의 움직임은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킬 정도다. 그만큼 담합의 폐해는 크다.
담합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경쟁을 손상시킨다. 경쟁시장에서는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합리적으로 결정되지만 담합이 이뤄지면 시장은 독과점 상태에 빠져 경쟁이 실종된다. 경쟁이 실종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담합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팔목을 비틀어 버리는 행위다. 그래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예외 없이 독과점을 강력히 규제하고 담합을 경제를 해치는 가장 위험한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독점금지법을 가장 강력히 시행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엄격한 법의 적용에서 면제돼 거의 유일하게 독과점적 지위를 누려온 업종이 건강 보험업이다. 건강 보험업은 1945년 연방의회 입법에 의해 연방정부의 독점규제 적용에서 제외됐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뻔한 일. 소수의 거대 보험사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구도로 재편되면서 보험사들 간의 경쟁은 실종돼 버렸다. 현재 건강보험 시장의 94%는 독점의 위험을 뜻하는 ‘고도 집중’ 상태에 놓여 있다. 몇몇 주에서는 한 보험사가 시장의 75% 이상을 지배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업종 같으면 곧바로 독점금지 조사가 시작되는 수치다. 이런 상황에서 시도 때도 없는 프리미엄 인상과 가격 담합, 업체들 간의 인위적인 시장 배분 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콩 심은데 콩 나는 것처럼 당연한 결과이다.
미국에는 보험업 말고 독점법 적용에서 제외된 또 하나의 업종이 있다.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다. 지난 1922년 연방대법 판결에 의해 메이저리그는 독점법 적용대상에서 벗어났다. 프로 스포츠 가운데 유일하다. 하지만 독점금지법에서 자유롭다고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위한 담합을 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감옥에 간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담합을 해도 아무런 처벌이 없다. 오히려 담합하면 할수록 주머니는 두둑해 진다.
헬스케어 개혁안을 심의하고 있는 연방의회가 보험사들의 이러한 독점적 지위를 없애기 위한 수순에 들어간 것은 뒤늦은 감은 있지만 바람직하다. 미국인 대다수가 건강 보험업계의 독점지위 폐지와 정부플랜인 ‘퍼블릭 옵션’ 제공에 찬성하는 것은 헬스케어 개혁이 업체들 간의 건강한 경쟁의 회복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인식이 표출된 것이다.
경쟁이 인간의 본성이듯이 독과점에 대한 욕구 역시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경쟁을 피해 손쉽게 이윤을 얻을 수 있을 때 그런 유혹을 떨쳐 버리기는 힘들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시대에도 업자들이 가격 담합을 해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욕망의 자율적인, 그리고 합리적인 억제란 인간의 본성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먼 얘기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일단 모였다 하면 항상 소비자들을 우롱할 술수나 가격상승 결의 따위로 대화를 끝맺는다”고 개탄했다.
하버드 대학은 얼마 전 보험이 없어 죽는 미국인이 매 12분마다 1명꼴에 달한다는 내용의 충격적인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는 왜 건강보험에 대해서만은 더 이상 애덤 스미스의 개탄이 들려와서는 안 되는지 설명해 준다. 이것은 가격이 아니라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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