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에 일하는 게 지겹다고 투덜대면 한 여자 선배가 말했다. 집에 있으나 직장에 나오나 일하기는 마찬가지야. 그런데 직장에서 일을 하면 돈이 나온단다
그렇다면 돈 못 받는 집안일을 하는 것과 돈 버는 직장 일을 하는 것은 뭐가 다를까. 어느 여성 자영업자의 관찰에 의하면 이런 차이다.
부부가 샤핑 왔을 때 부인의 태도를 보면 일하는 지 안 하는지 금방 알아요. 일하는 여성은 당당하게 물건을 집어요. 집에 있는 여성은 ‘이거 사도 돼?’하고 남편에게 묻지요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당당한 삶을 누리는 것 - 여권운동이 남녀평등을 통해 이루려는 것은 결국 이것일 것이다.
’남성의 그늘’에서 행복해야 할 여성들이 ‘평등’을 요구하며 밖으로 뛰쳐나온 것은 1960년대였다. 1972년 타임은 ‘신여성(The New Woman)’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여성들의 달라진 모습을 특집으로 냈다. 그리고 근 40년이 흐른 지난주 타임은 다시 ‘미국 여성의 실태’를 특집으로 냈다. 그런데 부제로 요약된 결론이 눈길을 끈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당연시 되면서 여성의 힘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해졌지만 행복도는 오히려 떨어졌다는 것이다.
1972년 미국의 TV 뉴스를 보면 아마 남성일색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대한뉴스에 여성이 등장하지 않은 것과 같다. 장관이나 대법관 등 보도대상이 될 만한 직책, 그리고 뉴스를 진행하는 앵커 중 여성은 한명도 없었다.
남성중심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강했던지 당시 인재 스카웃 담당자들은 여성을 간부직에 올리느니 남성을 달에 보내는 게 더 쉽다고 했다. 여권운동 진영은 ‘운동’이란 움직임인데 도무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니 ‘(여권)운동’이란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40년이 지나고 보니 사회는 엄청나게 변했다. 여성이 대통령이 된다 해도 이제 놀랄 사람은 없다. 여성들은 유례가 없는 자유, 높은 교육, 막강한 경제력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왜 여성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약육강식의 직장문화 속에서 겪는 스트레스,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어려움이 원인일 수 있고 자신의 고통에 대해 여성들이 보다 솔직해진 결과일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유전자에 각인된 모성애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이번 타임의 조사결과를 보면 상전벽해의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자녀를 위해서는 아빠가 일하고 엄마는 집에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남녀 공통의 생각이다. 아이를 떼어놓고 일하러 가면서 여성들은 마냥 성취감에 들뜰 수가 없다.
일하는 엄마의 고충이 요즘 한국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30대의 직장여성인 황명은(36)씨가 일하며 아이 키우는 어려움을 지난달 무가지에 광고형식으로 실은 것이 발단이었다. 이어 MBC의 심층취재 프로그램인 ‘뉴스 후’가 ‘나는 나쁜 엄마입니다’ 라는 황씨 글의 제목으로 직장여성의 육아문제를 다루면서 사회적 관심이 쏠렸다.
유튜브로 동영상을 찾아보니 전쟁이 따로 없었다. 미국의 한인주부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한국은 보육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아서 어려움이 더 큰 것 같았다. 세 아이를 둔 한 주부는 매일 아침 막내를 업고 두 아이를 앞세우며 버스를 갈아타고 가서 아이들을 맡겼다. 그러면서도 출근시간 맞추고, 저녁이면 아이들 픽업시간 맞춰야 하니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한 순간도 동동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황씨는 처음 ‘아침마다 이별하는 여자’라는 글을 냈었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5살짜리 아들을 떼어놓고 출근하면서 겪는 아픔, 미안함, 죄책감을 털어놓자 엄마들의 호응은 엄청났다. 집에서 살림만 하자니 혼자 도태되는 것 같고, 직장 일을 하자니 아이 걱정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어 이래도 저래도 행복하지 않은 여성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뉴스 후’의 남성 진행자들은 일하는 엄마들의 고충을 사회가 덜어줘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런데 육아는 왜 항상 ‘엄마’의 고충이어야 할까. 버스 갈아타며 세 아이 맡기는 주부를 보며 당장 드는 생각은 ‘남편은 뭐하고 있나’라는 의문이었다. 사회적 지원 기다리기 전에 가정 내에서 먼저 짐이 나눠져야 한다. ‘일하는 엄마’의 고충이 ‘일하는 부모’의 고충으로 표현부터 자연스럽게 바뀔 때 여성은 행복해질 수 있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