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내 혼자 피어 빈 학교를 지키던 빨강 칸나가 꽃피우기를 그만둘 때쯤이면 가을운동회를 열었다. 동네 잔치날이기도 했던 운동회날은 풀 끝의 이슬이 찬공기를 만나 서리가 되는 한로가 되기 전 쯤에 열렸다. 일손이 모자라 부지깽이도 덤벼들어야 한다는 상강이 되기 전에 열려야만 동네 사람들이 다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마다 괘종시계 밑에 걸린 달력을 보시고 절기를 헤아리시던 할아버지는 운동회 전날이 되면 쇠죽솥에 물 데워 목욕까지 하셨다.
가을운동회 전날, 한쪽 다리 약간 저시던 소사아저씨는 운동장을 빙 둘러 타원형의 홈을 파고 물주전자에 횟가루를 담아 하얀 트랙을 만드셨다. 국기 게양대를 중심으로 담벼락 대신 서있던 늙은 벚나무 가지에 방사선으로 만국기를 거는 일도 소사 아저씨의 몫이었다. 저물녘의 빈 운동장에서 펄럭이는 만국기를 보고 나는 처음으로 가슴이 뛰는 것을 경험했다.
아침 일찍부터 알밤톨 깍고 강낭콩 술술 섞어 차진 찰밥을 지으시는 어머니는 한 열흘 살강 위에 모아 두었던 계란을 삶고 다디 단 햇밤 한바가지도 삶고 소금물에 떫은 맛을 우려낸 감도 잊지 않고 챙기셨다. 사랑마루 위에 뽀얗게 씻어 놓은 할머니의 코빼기고무신까지 확인하고 대문간을 나서면 감나무 꼭대기 위에 앉아 기다리던 까치 한마리가 꽁지를 까불며 앞장을 섰다.
운동장에는 벌써부터 목 좋은 곳을 골라 뽑기풍선장수, 딱총장수, 솜사탕장수, 가짜반지장수, 삼각비닐봉지에 담아 팔던 삼색 쥬스장수, 과일장수, 요란한 피리소리로 동심을 끌어들이는 장난감장수가 자리를 잡고 점심시간은 멀었는데 장작불 무쇠솥 속에서는 돼지국밥이 설설 끓기 시작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으로 시작된 운동회는 “하나두울세엣네엣다스여스일고오여덜” 국민체조로 이어지고 하얀 체육복을 입으신 선생님이 하늘을 향해 딱총을 쏘아올리면서 저학년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칫수 큰 신발 땜에 달리다 신발이 벗겨진 아이, 옆사람의 발에 걸려 넘어져 땟국물 흐르는 눈물로 울음이 터진 아이, 발뒤꿈치 올리고 고개를 빼며 서서히 달아오르던 운동회는 꼭둑각시춤과 소고춤, 곤봉체조, 마스게임에서 장대에 묶어 놓은 보름달만한 박 터트리기로 이어졌다. 콩오재미 팥오재미의 세례를 못견디고 터진 박에서 오색 꽃종이가루가 날리면 점심시간이 되었다.
빼곡한 사람들 사이에서 용케도 식구들을 찾아 밑둥 터진 벚나무 아래, 노간주 나무 울타리 곁이나 백일홍 꽃목이 부러져 있는 앉은뱅이화단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었다. 입안에 삶은 계란을 우겨 넣고 딱종이를 사러 가는 동생, 그 동생을 붙잡아 미지근한 사이다를 먹이시는 할머니, 모처럼 바른 코티 가루분 냄새가 좋았던 어머니, 빨간 사과 한입을 베어물면 아귀가 아플 만큼 전해지던 단맛과 신맛의 기막힌 조화, 추억을 맛으로 표현하라면 그 홍옥의 맛에 가깝지 않을까.
국방색 낡은 확성기에서는 끊임없이 행진곡이 흘러 나오고 하늘에는 반나절을 끌어안고 먹어도 못다먹을 것 같은 구름이 떠있었다. 바람 타고 멀어졌다 가까와졌다 하며 가까운 마을의 어귀까지 날아가던 행진곡의 이름은 개선행진곡이었던가. 위풍당당행진곡, 혹은 군대행진곡이었던가. 운동회의 주인공이었던 우리들의 어깨를 이집트의 무장보다 더 위풍당당하게 만들어 주던 그 웅장한 리듬은 지금도 가을이 되면 한 번씩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듯하다.
점심식사 후 달리기 시합이 이어지고 목구멍에서 콩비린내가 나도록 달려보아도 나는 늘 꼴찌를 면치 못했다. 아침부터 엎치락 뒤치락하던 청군과 백군의 승부는 손에 물집이 잡히며 잡아당기던 줄다리기로 이어지고 마침내 승부가 결정되는 사백미터계주는 운동회의 꽃이었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발이 보이지 않게 달리던 친구들은 그날의 우상이었다. 손등에 파란 잉크도장이 훈장처럼 찍혀 있던 그 친구들은 어머니의 앞섶에 상품을 맡기고 돌아서며 또 한번 어깨가 으쓱해졌다
운동회의 끝순서에는 부락대항계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저학년에서 한명, 고학년에서 한명 청년 한명씩, 그리고 장년부까지 각 부락에서 선출된 선수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는 경기였다. 재학생들은 이미 손등에 잉크도장이 두어 개씩은 찍혀 있는 달음박질 선수들이었고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마을 청년들은 대개 그 학교의 졸업장 하나가 전부인 가난한 농군의 아들들이었다. 추억의 운동장으로 돌아와 하얀 출발선 앞에 다시 선 그들의 완강해진 다리, 얼굴에 손그늘을 만들어 올리고 연모하던 그 총각을 훔쳐보는 이웃마을 처녀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쳐댔다.
그 처녀의 손등으로 설익은 저녁노을이 나비처럼 내려앉기 시작하며 운동회는 끝나갔다. 하루를 질키던 질서의 상징이던 하얀 트랙이 무너지고 호루라기 소리도 목이 쉬어갔다. 본부석 하얀 차일 밑에 쌓여 있던 솥단지에 양은냄비, 플라스틱 바가지며 대야 등 푸짐한 상품들은 꽹과리와 징소리 속에 나뉘어지고 날은 저물어갔지만 북소리 장구소리 합세하면서 돼지수육에 막걸리로 얼큰해진 동네 아저씨들의 걸음걸이가 질펀해지기 시작했다.
운동회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 선생님은 상품을 못받은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일등은 세권, 이등은 두권, 삼등은 한권씩 나눠주던 월계수 테두리의 상이라는 글자가 자랑스럽던 누런 갱지 공책, 선생님은 한권도 받지 않은 아이들의 손을 들게 하시고 공책 한권이나 노란색의 향나무 연필 한 자루를 꼴지들에게도 쥐어 주셨다. 일등 하면 좋고 이등해도 좋고 꼴찌 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던 그날의 달리기…… 꼴지에게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던 가을 운동회의 법칙은 아름다웠다.
구슬처럼 속이 들여다보이는 십리사탕을 돌맹이로 갈라 친구의 입에도 넣어주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 말갛게 내놓은 종아리가 시려워지기 시작하며 산그늘이 내려앉았다. 그 들길을 느린걸음으로 걸어가시던 동네 아저씨들의 어깨에는 날마다 짓누르던 나뭇짐 풀짐 대신 손수건만한 붉은 노을 한 장이 얹혀져 있었다. 불콰해진 아저씨들의 흐트러진 걸음을 용케도 붙잡고 걷던 그 순하던 들길, 호루라기 불며 종횡무진, 매캐한 목에 이사람 저 사람이 건넨 막걸리를 거절 못하고 마신 비틀걸음의 우리 아버지와 누런 포장지의 은하수나 환희담배 두어 보루 묶여 있을 아버지의 자전거도 그 길을 건너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면 사발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오신 할아버지가 하얀 두루마기 벗어 놓은 채 초저녁잠이 들어 계시고 마루 위엔 따스운 물이 담긴 놋대야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물에 손 담그면 따뜻한 온기가 오원짜리 가짜반지 끼어 있던 손가락을 지나 취기처럼 온몸을 타고 흐르던 저녁……달리기는 꼴지를 했어도 토끼꽃 깍지 끼워 만든 풀반지 대신 열 나절 스무 나절 끼고 있어도 시들지 않던 가짜반지를 살 수 있어 행복했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보내지 않는다고 가지 않는 것이 몇이나 있으리오마는 마루 기둥나무의 호롱불 심지가 내려지고 손바람으로 등잔불을 끌 때까지 간절하게 보내기 싫었던 하루, 그날은 가을운동회 날이었다.
김용미
수필가 /포토맥,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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