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작년에 개봉된 한국 영화 두 편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경축! 우리 사랑’이고 또 하나는 ‘아내가 결혼했다’이다.
미주 한인들은 한국을 생각할 때 자신이 떠나던 시기만 기억하면서 현 한국의 시대적 상황이 아직도 그때와 똑 같다는 착각 속에 산다고 한다. 나 역시 25년 전 한국을 생각하며 현시대에 뒤 떨어진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과 영화가 생긴 이래 남녀관계 특히 부부관계의 복잡함은 세계적 소재가 되어 왔다. 대개 남편 혹은 아내가 상대를 두고 바람을 핀다는 얘기고 그 중 소수만이 여자가 바람을 핀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이 두 한국영화의 내용은 그 소수와도 한참 차원이 달랐기 때문에 서양 문화 속에서 25년을 산 내가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경축! 우리 사랑’은 오점균 감독 작품으로 2008년 4월에 개봉되었다. 딸의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지는 50세 아줌마의 이야기다. 평범한 아줌마의 말도 안 될 것 같은 사랑 이야기를 경쾌하게 그려 평단의 호평을 받았고, 2008년 대종상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끌어내기도 했다. 소재가 충격적이서 국내 극장가와 온라인에 열띤 논쟁을 벌이게도 했다.
코미디 영화로 분류되긴 하지만 사는 일을 있는 그대로 찬찬히 보여주어 현실감이 컸다.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크게 한몫 했으리라. 줄거리 소개 없이 글을 쓸 수 없으니 영화를 보려는 독자들은 지금부터 한쪽 눈을 감고 읽어 주시기 바란다.
주인공 봉순은 가끔 집에 들르는 바람난 남편과 함께 살면서 하숙생들에게 밥을 해주며 살림을 꾸려 나가는 파마머리의 허리 굵고 손톱이 닳은 50대 아줌마다. 그녀는 딸로부터 버림 받은 딸의 남자친구인 21살 연하의 하숙생 구상을 위로하다가 만취한 그에게 몸을 맡긴다. 그날 밤 임신된 것을 알게 된 둘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둘은 법적절차를 전혀 무시한 채 아이 낳을 결심을 한 후 드러내 놓고 연애를 한다. 바람 피던 남편과 딸이 돌아와 가정을 지키자며 그녀를 설득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구상을 택한다. 영화는 온 식구가 한 지붕 밑에 사는 것으로 끝난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두 부부 사이에서 자고, 봉순과 구상은 여전히 하숙집 아줌마와 하숙생이지만 연인으로 소박한 데이트를 즐기며. 그러니까 일처다부제인 셈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박현욱 작가가 2006년 3월에 출판한 소설로 세계문학 단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역시 ‘일처다부제’라는 충격적 소재로 곧 화제작이 되면서 많은 영화감독들이 욕심을 냈는데, 정윤수 감독에 의해 2008년 10월에 개봉되었다. 개봉 5주만에 170만 관객을 돌파하여 수익을 낸 몇 안 되는 한국영화로도 기록됐다.
이 영화는 이중결혼 특히 한 아내와 두 남편이라는 도발적인 소재를 앞의 영화처럼 생활 속에서 찬찬히 보여준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소재를 코미디 요소 없이 생활 속에서 찬찬히 보여 주어 마치 내게 있는 일처럼 느끼게 해 극장가와 온라인에 남자들의 열띤 논쟁을 일으켰다.
재미있는 것은 책을 쓴 작가와 두 영화의 감독이 다 남자라는 사실이다. 영화 소재 선택은 여러가지 조건 특히 예산과 마케팅 조건에 맞아야 하니 작가나 감독의 성별이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이런 소재가 여성의 머리와 가슴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 남성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왔으니 더욱 충격적인 것이다.
내가 알기로 동서고금을 통해 이 영화들처럼 일처다부제를 당당하게 이끌어가는 여성을 보여준 영화나 드라마가 없었던 것 같다. 특히 동양에서. 요즘 미국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HBO드라마 ‘큰 사랑(Big Love)’ 도 일부다처제라는 고리타분한 소재인 것이다.
아직도 많은 곳에서 유교전통을 고수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런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도 남자들에 의해서.
한국인들은 생각이든 행동이든 끝을 보는 기질이 있다는 말들을 하는데, 현대 한국여성의 위상이 높아지다 보니 생각이 거기까지 치닫게 된 걸까? 시집가면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아직도 진담처럼 하던 25년 전의 한국에 머문 나로선, 이 영화들이 현실이 된다면 참 신나고 고소할 것 같다.
김보경 / 대학 강사·수필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