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관한 모든 재능을 두루 갖춘 선수를 전문가들은 ‘5종세트 선수’(five-tool player)라고 부른다. 5종이란 힘과 빠른 발, 타격의 정교함, 폭 넓은 수비범위, 강한 어깨를 이른다. 이것을 다 갖췄다는 것은 공격과 수비에서 흠잡을 데 없는 실력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올해 첫 메이저리그 풀 시즌을 마친 추신수(26)는 ‘5종세트 선수’로 불리기에 전혀 손색없다. 호타준족을 상징하는 20-20클럽에 가입했을 뿐 아니라 정교함을 상징하는 3할 타율까지 기록했다. 추신수의 외야 수비는 정평이 나 있다. 특히 투수 출신인 그는 강한 어깨에서 나오는 빨랫줄 송구를 자랑한다. 한마디로 그는 잘 치고, 잘 달리고, 잘 던지는 만능선수다.
금년 추석 추신수의 입에서는 “더도 말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콧노래가 절로 흘러 나왔을 법 하다. 여러 해 동안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묵묵히 땀 흘려온 추신수는 올해의 알토란 활약으로 본격적인 성공시대의 초입에 들어섰다.
그런데 대박을 꿈꾸는 그의 앞에는 큰 걸림돌이 놓여 있다. 병역문제가 그것이다. 병역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지 않는 한 구단입장에서 장기계약을 선뜻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프로선수들에게 2년이 넘는 공백은 거의 치명적이다. 매년 10승 이상을 거두던 뛰어난 투수가 2년의 군대생활 후 투구 리듬을 완전 상실해 야구계에서 쓸쓸히 사라져 간 경우도 있다. 프로선수들의 병역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은 이런 절박한 이유 때문이다.
추신수는 병역에 관한 한 불운의 사나이다. 2006년 아시안게임 때는 대표에 선발되지 못했고 2008년 올림픽 때는 구단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금년 WBC에서는 준우승을 하고도 국민정서에 걸리는 바람에 2006년 대회와 달리 혜택을 받지 못했다. 2010년 아시안 게임은 그에게 주어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그의 병역이 해결된다면 그 자신과 그를 아끼는 팬들 모두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되겠지만 금메달이 따 놓은 당상도 아니고, 아시안 게임 참가가 병역 혜택으로 연결되리란 보장은 없다. 금메달이 무산될 경우 추신수는 고뇌의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장차 그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예단할 수 없지만 불법이나 편법이 아닌, 법이 허용하는 자격과 권리에 의해 자신의 신분문제를 해결한다면 이것을 존중해 줘야 한다. 영주권을 취득해 선수생활을 계속하면서 군 문제를 연기하는 것이 그나마 국민정서의 저항을 덜 받을 수 있는 현실적 방안으로 거론된다.
또 구단에서는 시민권을 권유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설사 그런 선택을 한다 해도 그것은 그의 자유이고 권리이다. 극단적으로 그가 아시안 게임을 포기하고 메이저리그 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절차를 밟는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합법적인 이주절차를 통해 영주권과 시민권을 받아 병역 의무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본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을 ‘비애국자’라고 비판하거나 손가락질 하지는 않는다. 시민권 취득을 통한 유명인 병역 회피의 대표적 케이스로 가수 유승준이 많이 거론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그에게 가해지는 비판은 시민권을 땄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을 무대로 돈과 인기를 얻고 있던 가수가 군대 가겠다던 팬들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행태에 대한 분노로 봐야 한다.
WBC 준우승 후 선수들에 대한 병역혜택 논란이 불거졌을 때 일부 보수논객들은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야구스타 테드 윌리엄스를 예로 들며 병역혜택 불가를 주장했다. 개인적으로는 기자 역시 혜택에는 찬성하지 않지만 애국심을 들먹이는 이들의 논리는 수긍하기 힘들다. 군대 가는 것을 애국심의 척도로 여기는 이들이 왜 일반인들보다 무려 4배나 높은 비율의 병역면제자들로 구성된 현 집권층에 대해서는 애국심 부족을 질타하는 쓴 소리 한 마디 없이 침묵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병역문제는 무서운 폭발성을 지니고 있다. 자칫 뇌관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심한 상처를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추신수는 그동안 병역문제에 대단히 조심스런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이제는 병역문제에 대해 좀 더 열린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추신수의 결정에 대해 편협한 애국심의 잣대를 들이대거나 여론으로 압박하려 든다면 옳지 않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개인의 행복 추구권에 관한 문제인 까닭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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